신관빈
申寬彬1885. 11. 10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관련 사건
- · 개성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1) 1885년 (음)11월 10일((윤) 10월 4일) 황해도 봉산군(鳳山郡) 서종면(西鍾面) 연비리(連比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장단군(長湍郡) 대남면(大南面) 장대리(長垈里)에 거주하면서 기독교 전도사로 활동하였다. 3월 1일 개성군(開城郡) 개성읍(開城邑)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다가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1919년 2월말 국내의 천도교·기독교·불교 등의 종교지도자들이 민족대표를 구성하여 독립선언식을 준비하면서 개성에도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었다. 독립선언서와 만세시위 계획을 전달 받은 개성 북부 예배당의 목사 강조원(姜助遠)은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충교(忠橋)예배당에서 유치원 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던 권애라(權愛羅)에게 독립선언서를 전달하였다. 이후 2월 26일 개신교 남감리교의 전도사 어윤희(魚允姬)도 성경학원 기숙사에서 신공량에게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윤희가 찾아와 독립선언서를 함께 배포하자고 권유하였다. 이에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부터 어윤희와 함께 개성읍 만월정(滿月町)·북본정(北本町)·동본정(東本町)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개성 주민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던 중 일제 군경에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1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풀려난 직후인 1920년 4월 18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인재 양성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