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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래

宋鴻來

1866. 5. 19 ~ 1953.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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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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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성주(星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성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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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5)

관련 사건

  • · 파리장서 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5) 1866년 5월 19일 경상북도 성주군(星州郡) 초전면(草田面) 문덕동(文德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야로(冶爐)(또는 야성(冶城))이며, 자는 순익(順翊), 호는 괴당(槐堂)이다. 한말 유학자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 54세가 되던 1919년 3월 ‘파리장서(巴里長書) 운동’에 참여하였다. ‘제1차 유림단(儒林團) 의거’로도 불리는 이 운동은 파리에서 열리는 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기 위한 독립청원서(일명 「파리장서」)를 보낸 항일 독립운동이었다. 김복한(金福漢)·곽종석(郭鍾錫)·김창숙(金昌淑) 등 호서와 영남의 유림들이 주축이 되어 일제의 한국 침탈과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알리는 서한을 작성하여 강화회의의 의장에게 보내어 한국민의 독립의지를 알리고자 한 것이었다. 이 서한에는 모두 137명이 연명하여 서명하였는데 이들 중 한 사람으로 서명하였다. 또한 이때 직접 장서를 다수 작성하여 이를 다른 유림들에게 배포하며 의거 사실을 알렸으며, 가까운 유림들에게는 「파리장서」에 서명할 것을 권유하고 의거에 동참할 것을 설득하는 등 적극 참여하였다. 「파리장서」는 김창숙이 상하이(上海)로 가져간 이후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 대표로 파리에 파견되어 있던 김규식(金奎植)에게 우편으로 전달되었다. 이후에는 강화회의 의장에게 전달되어야 했으나 목표를 이루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이 문서는 한문본 3,000부와 영문본 2,000부로도 각각 인쇄되어 각국 대표와 공사관에 발송되었으며, 국내 향교에는 한문본이 우송되었다. 비밀리에 진행되던 이 의거는 4월 2일 경북 성주의 만세시위와 관련하여 서명자 중 한 사람인 송회근(宋晦根)이 일경에게 체포되면서 발각되었다. 일제는 「파리장서」에 서명한 유림과 관련된 사람들을 모두 체포하였고 이때 붙잡혔다. 관련자들이 계속 붙잡혀 가자 가족들이 피신을 권했지만, “내가 아는 것은 의리일 뿐 화복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일제 경찰에 끌려갔다. 이후 같은 해 7월 2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받고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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