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윤
孫炳允1881. 8. 7 ~ 1962. 1. 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서산군 대호지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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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5) 1881년 8월 7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현재 당진시 대호지면) 두산리(杜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서산군 대호지면과 정미면 천의장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대호지면 도호의숙(桃湖義塾) 출신의 남주원(南柱元)·이두하(李斗夏)·남계창(南啓昌)·남상직(南相直)·남상락(南相洛) 등 유생들은 1919년 3월 서울에서 열리는 고종 장례식에 참여하였는데, 여기서 만세운동을 접할 수 있었다. 이후 서산 지역에도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위 열기가 고조되었다. 서산군 대호지면에서는 면장 이인정(李寅正)을 비롯하여 면서기 김동운(金東云)·강태완(姜太玩)·민재봉(閔載鳳)과 면사무소 직원 송재만(宋在萬) 등이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이들은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뒤 대호지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거사일은 천의장터 장날인 4월 4일로 결정하고, 사전에 면내의 각 리(里)별로 연락망을 구성하였다. 다수의 주민들을 만세시위에 참여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並木整理)의 건」이라는 공문을 각 마을에 보내 도로 보수를 위해 한집에 한명씩 4월 4일 면사무소로 모이라는 내용을 전달하였다. 4월 4일 아침 일찍 도로 보수에 사용할 연장을 소지하고 면사무소로 갔다. 면내 각 마을에서 집결한 약 60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나라의 독립을 위해 만세 시위에 나서자는 면장 이인정의 연설을 들었다. 이에 공감하여 대형 태극기를 선두에 세운 만세 시위 대열에 즉시 합류하였다. 이들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천의장터로 행진하였다. 시위대가 천의장터에 도착했을 때 정미면의 주민들까지 합류하여 만세 시위대의 규모가 이미 1,000여 명을 넘어섰다. 이들과 함께 천의장터의 곳곳을 행진하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일제는 인근 지역의 경찰들을 모아 급파하였으나, 쉽게 만세 시위를 해산시킬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당진경찰서에서 파견된 경찰들이 만세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여 부상자가 4명 발생했다. 이에 분노하여 만세 시위를 함께 했던 주민들과 주재소로 달려가서 일제 경찰을 구타하고, 돌을 던져 천의주재소를 파괴한 후 귀가하였다. 이후 시위 참여자 검거를 위해 대호지면으로 출동한 홍성헌병수비대에 붙잡혔다. 서산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만세 시위에 적극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1919년 4월 25일 즉결 심판에 회부되었다.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태(笞) 90도(度)의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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