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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완득

徐完得

1886. 4. 16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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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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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조치원(鳥致院)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조치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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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6)

관련 사건

  • · 안성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6) 1886년 4월 16일 충청남도 조치원(鳥致院)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서봉오(徐鳳五)·서병오(徐炳五)가 있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원곡면(元谷面) 죽백리(竹栢里)에 거주하였다. 4월 1일 안성군 원곡면 외가천리에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안성군 원곡면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28일부터 시작하여 4월 2일까지 이어졌다. 원곡면 만세시위는 원곡면사무소 앞에서 약 20~60명의 군중이 참여한 가운데 시작되었다. 시위는 점차 확대되어 3월 31일에는 군중이 약 200~300명으로 늘었다. 1919년 4월 1일 밤 집에 있다가 원곡면 읍내에 위치한 원곡면사무소 부근에서 만세소리가 들리는 것을 듣고 만세시위에 동참하고자 길을 나섰다. 같은 마을 주민 20여 명과 함께 만세를 부르며 원곡면사무소로 향하였다. 그리고 원곡면사무소에 가서 2천여 명의 만세시위대에 합류하였다. 원곡면을 출발하여 양성 읍내에 위치한 양성주재소로 가서 투석을 하고 사무실에 가서 집기 등에 방화를 했다. 사무실에서 서류, 기물 등을 들고 나왔다. 이후 만세시위대는 양성우편소로 가서 투석을 하고, 시설물, 전화기, 서류, 물품 및 집기 등을 파괴하고, 우편소 부근 전주 3개를 넘어뜨려 통신에 장애를 입히는 등의 행위를 했다. 재판과정의 진술내용 상으로는 원곡면사무소 앞 만세시위 참여 외에는 참여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이 일로 붙잡힌 뒤 재판에 회부되었다. 일제는 내란죄 적용 문제를 두고 오랜 조사 끝에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 예심에서 내란죄를 적용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경성지방법원을 관할 재판소로 지정하였다. 같은 해 8월 1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변호사들의 사법 절차 문제 지적 법정 투쟁의 결과 공소 불수리 처분을 받았다.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건조물 소훼, 소요죄 등으로 징역 1년 3월(구류일수 중 500일 본형 산입)을 받고 풀려날때까지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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