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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환

裵永煥

1882. 1. 15 ~ 1919.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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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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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居昌)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거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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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거창군 가서면
  • · 가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82년 1월 15일 경상남도 거창군(居昌郡) 가서면(加西面, 현 거창군 가조면) 석강리(石崗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거창군 가서면·가북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일본군에게 희생되었다. 거창 지역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0일과 22일에 가서면과 가북면(加北面)에 걸쳐 대규모로 일어났다. 전국적으로 의거의 함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을 전해들은 가북면의 김병직(金秉直)과 가조면의 어명준(魚命俊)은 3월 20일 가서면 장기리(場基里) 장날을 기하여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비밀리에 계획하였다. 3월 20일 장날 정오경이 되자 장기리 시장에 모인 400~500여 명의 군중들과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시위를 벌이던 두 사람은 가북면 용산리(龍山里)에 있는 용산헌병분견소를 습격하기로 하고 이동하였다. 그러나 헌병들이 모두 시장으로 출동하여 분견소는 비어 있었다. 그들은 분견소로 들어가 비치되어 있는 문서를 찢고 유리창과 기물을 파손하였다. 그리고 분견소로 돌아온 헌병들과 몸싸움을 하다가 붙잡혔다. 장기리 장날 만세시위를 주도한 두 사람이 붙잡혀 거창 소재 일제 헌병분대로 연행되었다는 소식에 오문현(吳文鉉)·신병희(愼炳禧)·어명우(魚命佑)·이병홍(李秉洪)·김호(金濩) 등 가조면 지역유지 50여 명이 모여 비밀회합을 가졌다. 이들은 3월 22일 거창읍 장날에 대대적으로 가서면·가북면 지역민들을 모아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고 야간을 이용하여 각 마을에 거사 계획을 전달하고 빠짐없이 참여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거사 계획이 누설되어 3월 22일 아침 헌병대에 의해 주도인물들이 붙잡혀 거창읍내 소재 일제 헌병분대로 연행되었다. 당일 이 소식을 전해 듣자 가서면·가북면의 지역민과 함께 가조면 장기리 만학정(晩鶴亭) 앞으로 모였다. 오후 2시 30분경 지역민 3,000여 명과 함께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주도인물들이 구속되어 있는 거창읍으로 향하던 중 실피재 인근에서 미리 포진하고 있던 일본군 헌병대와 마주치게 되었다. 일제 헌병대는 총을 쏘며 해산을 명령하였으나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돌진하였고, 곧바로 총격이 가해졌다. 이 총격으로 신문구(慎文九)·조이록(曺二祿)·이석종(李錫宗) 등이 현장에서 사망하였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때 심각한 부상을 당하여 결국 1919년 3월 27일에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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