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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규

朴贊圭

1928. 4. 5 ~ 2019.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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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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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淸州)광복군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청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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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한국광복군

포상 정보

  • · 애족장(200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0) 1928년 4월 5일 충청북도 청주군(淸州郡) 부용면(芙蓉面) 부강리(芙江里, 현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부강리)에서 박이서와 이우신 사이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제의 강요로 창씨명으로 중광부웅(中光富雄)을 사용하였다. 중국에서 일본군 군속으로 근무하던 중 한국광복군의 무기 탈취 활동을 도왔다. 1935년 부강보통학교에 입학하였고, 1937년 큰 아버지가 자리잡고 있던 중국 스자좡(石家莊)으로 가족들이 이주하여 스자좡에 위치한 일본 심상소학교 3학년으로 전학하였다. 부친은 스자좡에 주둔 중이던 일본군 내에서 매점을 운영하였다. 1939년 부친이 일하던 군부대가 베이징(北京)으로 이동하자 가족들과 함께 베이징 둥청(東城)으로 이주하여 베이징 봉성 제2심상소학교 5학년으로 전학하였다. 이 무렵 심장 관련 지병이 있던 모친이 사망하였다. 모친의 사망으로 동생들은 큰 아버지 댁에 맡겨졌으며, 베이징에서 양복집을 경영하던 작은 아버지 댁에 거주하게 되었다. 1940년 심상소학교를 졸업한 후 베이징의 상업학교인 베이징중학교 입학시험을 봤지만 낙방하여 1942년 베이징 봉성 제2국민학교 고등과에 진학하였다. 국민학교 고등과를 졸업한 후 현지 거류민단의 알선을 받아 당시 베이징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제1872부대(군의관 양성학교) 군속으로 취직하였다. 제1872부대에서는 사무실 청소와 인쇄 작업 등 말단 행정업무를 보았다. 부대 내에 베이징 봉성 제2심상소학교와 베이징 봉성 제2국민학교 고등과 동창이었던 김순근(金順根)이 있었다. 취직 전에는 거의 친분관계가 없었고 김순근은 곧 부대를 그만두었다. 어느 날 장교 숙소에 숙직을 서고 있을 때 김순근이 찾아왔다. 이때 김순근은 자신이 광복군 활동 중이며 광복군 모집을 하러 왔는데 활동을 위해 무기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협력을 요청하였다. 이에 응하여 1945년 3월 일본군 장교의 권총을 탈취하는데 협력하였다. 며칠 후 김순근이 헌병에게 붙잡히면서 권총이 탈취된 사실이 발각되어 함께 붙잡혔다.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김순근은 심한 고문을 겪다가 자살하였다. 1945년 4월 21일 군사재판에서 징역 단기 5년, 장기 7년을 받았다. 이후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되어 옥고를 치르다 광복을 맞이하여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최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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