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손익극

孫翼極

1919. 3. 28 ~ 1989. 2. 4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손익극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북 영일(迎日)일본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족장(2017)

관련 사건

  • · 일대 제2상업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집단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7) 1919년 3월 28일 경상북도 영일군(迎日郡) 죽장면(竹長面) 상옥리(上玉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손승사(孫勝司)·손승계(孫勝啓)가 있고,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대산익극(大山翼極)을 사용하였다. 일본 유학 중 독립을 목적으로 민족의식을 고취하고자 조직된 모임에 참여하였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일본으로 건너가 1940년 도쿄(東京)에 있는 니혼대학(日本大學) 제2상업(야간부)에 재학 중 김기영(金基榮)·서규연(徐圭演)을 중심으로 한인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항일조직을 결성하였다. 김기영은 당시 한국 민족의 사회적 생활 환경을 통찰하고 일제의 한국 통치는 소위 내선일체를 표방하면서 결국은 한인을 착취 압박하는 기만 정책이라고 판단하고 이러한 질곡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 민족의 참된 행복은 가져올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서규연은 한국 민중에게 독립 의식을 계몽하여 전국적으로 일제히 봉기하도록 혁명 기운을 양성할 것을 원하였고, 김기영은 의무교육, 징병제의 시행을 촉진하는 등 합법적으로 한국 문화의 향상을 도모하면서 혁명 기운을 양성하여야 한다는 의견을 갖고 있었다. 1940년 3월경부터 이들과 학우로서 교유하다가 각자의 주장을 교환하여 전적으로 의기투합하여 동지 규합을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9월경 김기영·서규연·이장우(李章雨)와 함께 서로 독립운동에 헌신하여 동포 구제의 동지가 된다는 내용의 맹약을 하였다. 동지들과 함께 각자의 하숙집 등에서 자주 모이며, 의식의 고양 내지 독립운동 추진 전개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이어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를 허위에 기반한 것으로 간파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아울러 구체적인 행동 방식으로 조직원들을 각 분야의 전문가로 양성하는 한편, 일제에 의해 군인으로 동원된 한인들의 무력 항쟁을 돕는데 힘쓰고자 하였다. 이러한 활동이 거사 직전 일제 관헌에 탐지되었고, 1941년 10월 조직원들이 붙잡히면서 무력 항쟁은 어려워졌다. 1942년 12월 22일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동경형사지방재판소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방광석⋮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