孫龍祐
孫祐1923. 1. 19 ~ 1999. 2. 2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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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8) 1923년 1월 19일 경기도 양평군(楊平郡) 설악면(雪岳面) 방일리(訪逸里, 현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방일리)에서 태어났다. 일본이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천일정웅(天日正雄)을 사용하였다. 조선문화학원에 재학 중, 독서회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조선문화학원 중등과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0년 7월 초 서울 성북정(城北町, 현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에서 같이 하숙을 하던 이완기(李完基)로부터 “한국인으로서 한국을 잊는 일이 없도록 재학 중에는 학우를 지도하고 졸업 후에는 농촌 청년을 지도하여 한국 독립의 목적을 달성하고 민족의 행복을 도모해야 한다”는 제의를 받고 이에 동의하였다. 구체적으로 일본어 배척, 황국신민서사 배격, 군대식 교육 거부 등 반일적인 행동을 하기로 했으며, 이를 같이할 동지를 규합하려고 했다. 또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승리하면 아시아로 영향력을 확장하려 할 것이고 그러면 독일과 일본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데, 일본은 현재 중국과 전쟁 중에 있으므로 국력이 약해져 독일과의 전쟁에서 필패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혼란을 틈타 조선 독립운동을 결행하면 쉽게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므로 그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준비해둘 필요가 있다”는 뜻에 찬동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논의하였다. 곧이어 조선문화학원 내에서 동급생 전태현(全泰賢)·박형락(朴炯洛)·은인관(殷仁寬)·이종호(李鍾浩)·박내수(朴來洙)·조재홍(趙在弘) 등과 함께 독서회(讀書會)를 조직하고 독립운동에 대해 협의하였다. 그리고 독서회의 확대를 위해 동지를 규합하는 한편 민족적 성격의 서적을 탐독하였다. 일본 역사의 허구성 등을 언급하며 학습할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동아일보』·『조선인보』 등 이른바 민족지(民族紙)가 부당하게 폐간된 사실을 성토하며 동료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일반인들에게 독립의 필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하여 1940년 9월 28일 오후, 서울 사직공원 입구의 경성부(京城府) 국세조사 광고판에 ‘대한독립만세’ 등의 낙서를 하여 일제 경찰을 긴장시켰다. 이른바 이 ‘불온낙서 사건’이 종로경찰서에 발각되면서 대대적인 검거 선풍이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동료들과 함께 붙잡혔다. 1942년 2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육군형법,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미결구류일수 중 20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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