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부기준

夫己準

1911. 11. 11 ~ 1952. 8. 1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부기준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제주(濟州)학생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제주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조선학생전위동맹
  • · 중앙청년동맹 북구지부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관련 사건

  • · 광주학생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8) 1911년 11월 11일 전라남도 제주군(濟州郡) 조천면(朝天面) 북촌리(北村里, 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에서 태어났다. 서울의 배재고등보통학교(培材高等普通學校) 재학 중에 광주학생운동 지지 활동으로 퇴학당하였다. 배재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9년 10월 30일 광주(光州)에서 한국인 여학생이 일본인 학생에게 조롱과 모욕을 당하자 이에 격분한 박준채(朴準埰) 등이 일본인 학생과 충돌한 것을 계기로 민족 차별 교육에 반대하고 일제에 저항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이후 광주학생운동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같은 해 11월 7일 이러한 소식을 배재고보에서 이미 퇴학 처분을 받은 손율기(孫栗基)로부터 전해 듣고 광주학생운동을 지지하는 동맹휴교를 주도하였다. 2학년생 정부균(鄭富均)과 협의하여 먼저 학교 측에 진정서(陳情書)를 제출하고 11월 9일에 동맹휴교를 일으킴과 동시에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손율기와 함께 광주학생운동 희생자의 무조건 석방과 언론·집회의 자유 보장 등을 내용으로 하는 진정서를 작성하고, 계획대로 맹휴를 진행하려 하였으나 거사 당일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좌절되었다. 당시 비밀결사인 조선학생전위동맹의 간부로 활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발각되어 동맹휴교사건과 더불어 1930년 1월 18일 배재고보에서 퇴학 처분을 받았다. 일본의 감시를 피해 1930년 3월 28일 일본으로 건너갔다. 4월 6일 히로시마현(廣島縣) 구레시(吳市)에 있는 사립 고분중학교(興文中學校) 5학년에 편입하였다. 5월 7일 구레시로 출장 온 종로경찰서 형사에게 붙잡혀서 11일 밤 종로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조사 결과 동맹휴교는 계획 단계에서 그쳤기 때문에 불기소로 풀려났다. 1931년 4월 22일 중앙청년동맹 북구지부 정기대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7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박영희(朴英熙) 등이 주도한 ‘프로예술동맹의 격문 배포 사건’에 연루되어 붙잡혔다가, 8월 말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