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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응찬

邊應燦

1890. 5. 3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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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변응찬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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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봉산(鳳山)임시정부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봉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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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보합단
  • · 대한민국 임시정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8) 1890년 5월 3일 황해도 봉산군(鳳山郡) 사리원(沙里院) 구천동(駒泉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원주(原州)이다. 보합단(普合團)에 가입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재무부원으로 활동하였다. 보합단은 김시황(金時晃)·김동식(金東植)·백운기(白雲起) 등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부호들로부터 군자금을 모금하고, 암살대를 조직해 일본인 군인과 경찰, 친일 밀정, 민족 반역자를 처단하고 식민지 통치 기관을 습격하는 투쟁을 전개하였다. 1920년 9월 보합단 소속으로 김기주(金基周)와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고 일제 밀정을 처단하였다. 1921년 4월 상하이(上海)로 건너가 동향 출신 임시정부 군무부 참사(參事) 장승조(張承祚)를 만나 임시정부 재무부원으로 발탁되어 국내로 돌아왔다. 이때 평안북도 정주군(定州郡)의 부호들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의 탄압을 피해 중국으로 이동하였으나 1921년 10월 12일 삼도랑두(三道浪頭)에서 김기주와 함께 중국 관헌에 붙잡혔다. 일제 경찰에 인계되어 1922년 6월 8일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원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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