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동식
宋東植1907. 12. 9 ~ 1980. 12. 1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독서회중앙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광주학생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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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07년 12월 9일 전라남도(全羅南道) 장성군(長城郡) 장성면(長城面) 영천리(鈴泉里)에서 태어났다. 전라남도공립사범학교(全羅南道公立師範學校)에서 수학하였다. 1929년 독서회중앙부(讀書會中央部)를 조직하여 활동하였고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하였다. 1929년 3월 광주군 광주읍 서문통(西門通, 현 광주광역시 동구) 중국음식점 연빈루(宴賓樓)에서 임종근(林鍾根)·김기주(金基柱)·최상호(崔相鎬)·김태영(金泰泳)·임종대(林鍾大) 등과 만나 신사상 연구에 매진하여 독립에 노력한다는 내용에 관해 협의하였다. 그 해 6월 중순 광주군 광주읍 양림리(楊林里, 현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김기권(金基權) 집에서 김상환(金相奐)·김보섭(金普燮)·윤창하(尹敞夏)·강달모(姜達模)·김순복(金順福) 등과 만나 독서회중앙부를 조직하였다. 김순복과 함께 그룹의 편성과 신사상 연구 방법의 지도를 담당하는 조직·교양부 위원에 선임되었다. 독서회중앙부에서는 광주의 각 학교에 비밀결사를 조직하기로 하고 비밀결사 자금 조달을 위해 소비조합을 설립하기로 하였다. 1929년 6~9월 사이 동지들과 함께 소비조합 설립에 관해 협의하고 각 학교 독서회 회원들이 자금을 대어 소비조합 문구점을 개설하였다. 1929년 7월 초 광주군 광주읍 소재 수피아여학교 뒷산에서 이춘수(李春洙)·(李迎白)·홍귀주(洪貴周)·김재용(金在瑢)·박노기(朴魯淇) 등과 만나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4개 그룹으로 나누어 활동하기로 하였다. 같은 달 광주군 광주읍 양림리 뒷산에서 동지들과 만나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지방 청년에게 마르크스 주의를 선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임종근으로부터 「여름방학 중에 우리의 활동 범위」라는 제목의 인쇄물 100부를 전달받아 그 중 10부를 전라남도공립사범학교 독서회 회원들에게 배부하고 40부는 광주농업학교 조길룡(曹吉龍)에게 넘겨 광주농업학교 독서회 회원들에게 배부하였다. 또한 전라남도공립사범학교 뒷산에서 독서회 회원들과 만나 여름방학 중 활동에 관해 협의하였다. 9월 이신형(李信珩)을 독서회중앙부에 참여시켰다. 9월 중순 광주형무소 뒷산에서 동지들과 만나 독서회중앙부를 개편하고 독서회 대표에 선임되었다. 독서회중앙부는 9월 하순 자체 해산하였다. 1929년 11월 3일 광주의 각 학교 학생 약 300명과 함께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하였다. 광주학생운동은 같은 해 10월 30일 전라남도 나주역(羅州驛)에서 한·일 학생들 간 우발적 충돌이 발단이 되었다. 이후 광주에서 학생들의 조직적 시위로 발전되었고 1930년 3월까지 전국 각지로 확산되었다. 전국 194개 학교에서 54,000여 명이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하였다. 독서회 회원들과 청년운동가들은 학생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제2차 시위를 준비하였다. 1930년 3월 전라남도공립사범학교 제3학년 재학 중 퇴학당하였다. 일제 경찰에 붙잡혀 광주지방법원 예심에 회부되었다. 7월 17일 예심이 종결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10월 18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보안법·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4년(미결구류일수 중 7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1931년 6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2년(미결구류일수 중 365일 본형 산입)을 받고 광주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1932년 6월 13일 오전 8시 강달모·강신연(姜信衍)과 함께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최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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