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선
宋剛瑄1874. 4. 24 ~ 1941. 11. 18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 ·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0) 1874년 4월 24일 전라북도 김제군(金堤郡) 금구면(金溝面) 오봉리(五鳳里)에서 태어났다. 한학을 수학하였고, 유학적 소양을 지녔다. 1916년 8월 참판 기정진(奇正鎭)의 손자로 문유(文儒)로 추앙받던 기우만(奇宇萬)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교류하였다. 기우만은 1895년 을미의병 당시 호남지역의 실제적 총수 역할을 했던 인물로, 학문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영향을 받아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아들과 함께 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원이었던 나용균(羅容均)과 교통부(交通部) 차장 김철(金澈)을 만나 대한민국 임시정부 교통부(交通部) 교통위원(交通委員)이 되었다. 당시 임시정부는 선전·조직·정세 파악의 임무를 부여한 조사원(調査員)·특파원(特派員)·선전위원(宣傳委員) 등을 국내에 파견하였다. 이때 나용균과 김철의 권유로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전라도 내에서도 한인 다수를 모아 임시정부에 참여시키도록 노력할 것을 약속하고, 송정욱(宋鼎頊)과 함께 전라북도 옥구현(沃溝縣)의 조사원으로 파견되었다. 같은 해 12월 5~6일 무렵 전라남도 해남군(海南郡) 삼산면(三山面) 송정리(松汀里)의 이원용(李元鎔)을 찾아갔다. 그리고 이원용에게 당시 상하이 지역과 세계의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임시정부 조직원 가운데 전라도 출신이 적은 사실을 말하며, 독립운동을 위해 함께 상하이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고, 1920년 6월 5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병합은 강제에 의한 것이며, 총독의 통치 잘못으로 생령이 도탄에 빠져 일제히 반동력이 반도에 팽창하여 큰 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상황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이에 조선 사람이 조선 독립을 위한 활동이 어찌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방해한 것인가”라며 항소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7월 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재차 상고하였으나, 그 해 8월 14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었다.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겪었고, 1922년 2월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원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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