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림전
夫林栓1920. 2. 7 ~ 1977. 11. 24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흥아연구회
- · 계림동지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20년 2월 7일 전라남도 제주군(濟州郡) 조천읍(朝天邑) 북촌리(北村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부두전(夫斗栓)을 사용하였으며,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도촌임전(島村林栓)으로 고쳤다. 아버지는 부기남(夫基楠), 어머니는 김태규(金太圭)이며, 아내는 한옥순(韓玉順)이다. 1940년 당시 니혼대학(日本大學) 부설 오사카전문학교(大阪專門學校) 특과(特科) 야간부(夜間部) 학생으로 재학하는 가운데, 금속완구 제작업에 종사하였다. 1940년 4월 말, 동교생인 김병목(金丙穆)과 고봉조(高奉朝)의 초대를 받아 오사카시(大阪市) 히가시나리구(東成區) 소재의 다방 ‘판죠’에서 니혼대학 조선유학생학회 회원인 강금종(姜金鐘)·한만숙(韓滿淑) 등과 함께 김봉각(金奉珏)을 만났다. 김봉각은 도쿄제국상업학교(東京帝國商業學校)를 졸업하고 오사카에 돌아와 큰 매형 김정성(金正成)이 경영하는 가네시로 자물쇠 제작소(金城錠前製作所)에서 근무하였는데, 이 곳 가네시로 제작소에 근무하는 김병목과 고봉근을 만났다. 김봉각이 도쿄에 있는 한인 학생들이 한국어를 사용하고 동포를 위해 진력할 것을 목적으로 토론과 연구를 하고 있는 반면, 오사카에 있는 한인 학생들은 게으르고 의미 없는 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질타하자 동지들과 함께 동포의 무지를 계몽하기 위해, 또 동포의 행복을 위해 공부하며 어떠한 장애와 곤란도 무릅쓰기로 의기투합하였다. 이를 위해 수차례의 모임을 가진 후인 1940년 5월 흥아연구회(興亞硏究會), 혹은 대동아연구회(大東亞硏究會)라고 불리는 독서회를 만들기로 합의하였다. 이후 ‘국제정세의 압박’과 ‘국내의 물자수급문제’에 따라 조직활동을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 아래 독서회를 비밀결사 계림동지회(鷄林同志會)로 바꾸었다. 계림동지회에서 활동하면서 ‘한국독립 탈환’을 위해 매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인텔리층의 획득을 과제로 삼았다. 이를 위해 특히 니혼대학 오사카전문학교 관계자를 중심조직체로 하여 학내 구성원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다른 4명과 함께 협의하여 동지의 가맹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위치에 서 있었다. 이러한 활동을 이유로 1941년 2월 26일 다른 동지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42년 10월 9일 오사카 지방재판소에서 징역 1년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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