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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수

愼鏞秀

1888. 10. 28 ~ 1951.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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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신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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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高敞)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고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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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전북독립운동감독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8년 10월 28일 전라북도 고창군(高敞郡) 흥덕면(興德面) 사천리(沙川里)에서 태어났다. 전해진 자료의 한계로 본관과 가족관계 및 유년시절에 대한 기록은 확인할 수 없다. 열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투철한 민족정신으로 의병에 투신하여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1905년 일제에 의해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된 이듬해인 1906년 아버지를 따라 최익현(崔益鉉)이 전라북도 정읍(井邑)의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의병을 일으킬 때 의병부대에 들어갔다. 1908년 2월에도 박도경(朴道京) 의병장이 지금의 충청남도 보령(保寧) 지역인 남포(藍浦)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박도경 의병부대에 들어가서 일본군과 싸워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1919년 3월 15일 전북 고창군 무장면(茂長面) 동명보통학교(東明普通學校)에서 열린 독립선언식에 참가하였다. 박영관(朴永寬)의 주도로 개최된 독립선언식은 예수교 선교사 송주일과 만세운동을 결의하고 서울에서 미리 준비해 온 태극기 300여 개와 독립선언서 등을 등사해 학생과 마을 주민 400여 명을 동원한 거사였다. 박영관이 선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던 중 일제 경찰 10여 명이 출동하여 만세운동을 저지하였는데 이때 일제 경찰에 붙잡혀서 30일간 옥고를 겪기도 하였다. 1919년 4월 만세운동 이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이후 국내의 독립운동을 관리·감독하고 군자금을 효율적으로 모집하기 위하여 전주(全州)지역에 전북독립운동감독부(全北獨立運動監督府)가 설치되었다. 감독으로 노진룡(魯鎭龍), 부감독으로 오의균(吳毅均) 등을 임명할 때 고문으로 추대되었다. 고창지역에서 전북독립운동감독부의 강대직(姜大直), 이종택(李鍾宅) 등과 고문으로서 활동하며 민족정신 고취, 격문 살포 및 군자금 모집에 주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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