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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환

申奭煥

1876. 6. 20 ~ 1947.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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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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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서울특별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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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주비단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9)

관련 사건

  • · 주비단 군자금 모집(대한민국 임시정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9) 1876년 6월 20일 한성부(漢城府) 종로(鍾路)(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중학동)에서 태어났다. 전해진 자료의 한계로 자세한 성장 배경과 집안 내력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 국권상실 이후에 구한국 궁내부(宮內府) 주전원경(主殿院卿)이던 이민식(李敏軾) 등과 함께 1919년 만세운동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등 긴밀하게 관계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민식이 배일(排日)을 목적으로 동지인 여준현(呂駿鉉)·장응규(張應圭)·안종운(安鍾雲) 등과 함께 1919년 서울에서 조직한 독립운동단체인 주비단(籌備團)의 단원이 되었다. 이들은 만세운동 이후 독립운동에 착수하여 우선 관헌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자금으로 경성신문사를 매수하여 표면으로는 신문사를 경영하면서 일대 비밀결사를 조직하려고 경성신문사 경영자인 아오야나기 난메이(靑柳南冥)에게 5,000원을 교부하였다.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기 위해서는 임시정부가 발행한 신뢰할 만한 증서(證書)가 필요했다. 이에 따라 1919년 3월 하순에는 임시정부의 여운형(呂運亨)에게 보내는 소개장(紹介狀)을 작성하여 장응규를 상하이(上海)로 파견하였다. 장응규는 주비단규칙(籌備團規則), 적십자규칙(赤十字規則), 민국공보신한청년(民國公報新韓靑年) 등을 휴대하고 같은 해 6월 상순에 귀국케 하여 마련된 주비단규칙에 의해 주비단을 조직하였다. 장응규는 주비단을 조직하여 임시정부와 연락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해 달라는 의뢰서를 받고 서울로 돌아온 것이다. 그에 따라 1920년 6월 서울 연지동(蓮池洞) 경신학교(儆新學校)(현 경신고등학교)에서 소진형(蘇鎭亨)이 단장(團長)이 되었으며 이민식은 사령장(司令長)이 되어 비밀결사 주비단을 조직하게 되었다. 이때 참모장(參謀長)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주비단이 제일 주력하였던 것은 군자금 모집이었다. 장응규가 임시정부가 발행한 공채증권(公債證券) 10,000원 분을 가지고 와 이것을 자산가에게 매각하여 6,000원 정도의 군자금을 조달하였다. 이러한 활동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단원 대부분과 함께 붙잡혔다. 이 일로 1922년 4월 1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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