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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선

辛文善

1906. 10. 24 ~ 1937.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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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신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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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곡성(谷城)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곡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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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노동회 전남노농협의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노동회 전남노농협의회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6년 10월 24일 전라남도 곡성군(谷城郡) 오산면(梧山面) 율천리(栗川里)에서 태어났다. 전해진 자료의 한계로 성장 과정이나 가계에 관한 사항은 확인할 수 없다.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일본 학생이 한국인 여학생을 희롱하는 사건을 계기로 한국 학생과 일본 학생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였다. 이 일은 그 해 11월 12일 광주지역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한국인 학생의 시위를 촉발시켰는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한국인 학생들의 시위는 호남 일대로 확산되는가 싶더니 이내 서울 등으로 번지면서 전국적인 학생 항일운동으로 퍼져나갔다. 단순히 일본 학생에 의한 한국 여학생 희롱이 문제가 아니라 한민족에 대한 교육차별에 저항하는 반일의 색채를 띠며 이듬해 5월까지 국내 지역과 만주까지 확산되어 전국적인 동맹휴학, 만세 시위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시위에 대한 일제의 탄압을 생생히 목격하면서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결의하였다. 1930년 4월 15일 정동화(鄭東華)·한덕명(韓德明) 등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옥과노동회(玉果勞動會) 결성을 논의하였다. 정동화는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光州公立高等普通學校, 현 광주제일고등학교) 재학 중인 1928년 6월 일본인 교사 배척운동을 일으켜 퇴학 처분을 받고,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받는 등 전부터 신사상에 공명하고 이에 대해 연구와 활동을 계속해 왔다. 정동화·한덕명은 옥과노동회의 회원을 1,900명으로 확대하는데 공헌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각기 곡성군 관내 3개의 면(面)을 책임지고 맡아 조직하기로 하였다. 이후에 1931년 12월 19일 전남노농협의회(全南勞農協議會)가 광주(光州)에서 조직되자 이에 흡수되어 재조직하였다. 전남노동협회의(全南勞動協議會)의 총비서(總秘書)에는 김호선(金好善)이 선출되었으며 노동자와 농민의 문제를 함께 아우르고, 이들을 규합하여 반일·반제국주의적인 성격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단체에서 면(面)의 하부조직을 맡아 농민의 독립정신 고취를 위한 활동에 주력하다가 1932년 10월 16일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33년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1936년 10월 풀려났으나 심한 고문의 여독으로 이듬해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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