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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윤

宋慶潤

1908 ~ 1930.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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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송경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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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주(楊州)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양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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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신간회 경동지회
  • · 중앙청년동맹

포상 정보

  • · 애국장(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1)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주내면(州內面) 고읍리(古邑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30년 당시 23세이므로 1908년생으로 추정된다. 1930년 일제 경찰에 붙잡힐 당시 서울 숭인동(崇仁洞)에 거주하였다. 1919년 4월 서울 창신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1923년 4월에 어의동공립보통학교로 전학하였다가 1925년 3월에 졸업하였다. 1926년 3월 독립문상업학교에 입학였지만 1학년 때 중퇴하였다. 이후 숭인동에 있는 광성학교(光星學校) 교사를 지냈다. 1928년 봄에 신간회(新幹會) 경동지회(京東支會)에 입회하고, 1929년에 중앙청년동맹 동구지부 회원이 되었다. 1930년 6월 14일에 고양군 숭인체육회 주최로 열린 제3회 전고양축구대회에서 경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30년 6월 21일 중앙청년동맹 동구지부 제1회 정기대회에서 집행위원 및 체육부장으로 선임되었다. 같은 해 8월 30일 오전 ‘한국병합기념일’을 맞아 홍영섭(洪榮爕)과 함께 동대문 밖 공동화장실 벽과 동대문성벽에 ‘백의동포(白衣同胞)에게 격(檄)함’이라는 제목으로 한지에 작성한 격문을 붙였다. 이 일로 9월 8일 오후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은 격문에 사용한 종이에 일장기를 그렸다가 그 위에 글을 썼기 때문에 “국기의 훼손은 일본 국체의 파괴를 의미함과 같다”고 해석하여 징역 1년을 구형하였다. 1930년 10월 1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항소하였으나 그 해 11월 1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같은 해 11월 23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장티푸스에 걸려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장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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