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준기
宋俊基1863. 8. 6 ~ 1946. 9. 2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1919년 충청남도 서산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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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5) 1863년 8월 6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현 당진군) 대호지면(大湖芝面) 도이리(松田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1919년 서산군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9일 충청남도 서산에서 만세운동이 시도되었다. 그러나 일제 경찰에게 사전에 탐지되어 성사되지 못하였다. 3월 24일 해미면(海美面)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후 4월에 들어서 대호지면과 정미면(貞美面)의 천의(天宜) 장터 만세운동을 시작으로 서산군내 각 면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4월 2일 대호지면에서 민재봉(閔載鳳)·김동운(金東雲) 등 면관리들이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은 대호지면장 이인정(李寅正) 명의로 “4월 4일 아침 각 이장은 도로 보수에 나오라”는 내용의 공문을 작성하였다. 4월 3일 이 공문을 각 이장에게 전달하였다. 면사무소에서는 애국가 300여 장을 등사하고 아울러 태극기 1기를 제작하였다. 4월 4일 아침 면사무소에 각 마을 주민 약 500명이 모였다. 면장 이인정은 주민들에게 “도로 보수를 하고자 모이라고 한 것이 아니다. 만세를 부르며 천의 장터로 행진하자”며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는 연설을 하였다. 주민들은 이에 찬동하고 주도자들의 인솔 하에 정미면 천의 장터로 행진하였다. 군중은 천의경찰관주재소와 정미면면사무소 앞에서 만세를 외치며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오후 4시경 일제 경찰들이 군중을 해산시키고자 발포하였다. 이에 격분한 군중이 천의경찰관주재소로 몰려가 일본인 순사와 한국인 순사보를 구타하고 주재소를 파괴하였다. 이에 서산, 당진, 홍성에서 군경 13명과 재한일본인들 10여 명이 만세운동 탄압을 지원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일제 군경은 21명을 체포하고 군중을 해산시켰다. 4월 8일 대호지면 만세운동은 재기되었다. 송전리(松田里) 주민 약 20여 명이 경계 중인 군경을 공격하는 한편 조금리(調琴里)에서는 70여 명의 주민이 ‘독립만세’를 불렀다. 정미면 수당리(壽堂里)에서도 주민 300여 명이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자료의 미비로 구체적으로 참여한 만세시위와 그 시위에서의 역할을 특정하기 힘들다. 4월 서산군 대호지면과 정미면 일대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붙잡혔다. 1919년 4월 24일 서산경찰서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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