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필
宋在弼1888. 2. 17 ~ 1965. 11. 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경기도 안성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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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8년 2월 17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원곡면(元谷面) 외가천리(外加川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송정삼(宋正三)이 있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4월 1일부터 2일까지 진행된 안성군 원곡면·양성면(陽城面)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안성군 원곡면 외가천리에서 이근수(李根洙)의 제의로 만세운동에 참여하기로 결심하였다. 4월 1일 밤 8시경 원곡면 외가천리 원곡면사무소 앞에 칠곡리(七谷里)·외가천리·내가천리(內加川里) 주민 약 1,000여 명이 모였을 때 참여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들과 함께 양성면으로 출발하여 원곡면과 양성면 사이의 고개에서 이유석(李裕奭) 등의 연설을 들었다. 이후 양성면으로 향하여 만세를 부르고 있던 군중들과 합류하여 2,000여 명의 규모를 이루었고, 양성경찰관주재소, 우편소, 면사무소 등을 파괴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앞장서서 양성경찰관주재소와 우편소에 돌을 던졌다. 만세시위는 더욱 공세적으로 격화되어 경찰주재소를 방화하고 일본인이 운영하는 잡화점을 태우기도 하였다. 그리고 시위대는 계속해서 4월 2일 새벽 4시에 원곡면으로 돌아가 원곡면사무소 건물 역시 파괴하는 등 공세적 시위를 진행하였다. 이러한 운동에 동참한 결과, 이후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내란죄 적용 문제를 두고 오랜 조사와 재판이 이어졌다.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에서 내란죄를 적용하지 않기로 하고 경성지방법원으로 관할 재판소를 지정받았다. 같은 해 8월 1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변호사들의 사법 절차 문제 지적 법정투쟁의 결과 공소 불수리 처분을 받았다.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건조물 소훼죄, 소요죄 등으로 징역 3년(미결구류일수 중 50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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