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장식
宋章植1895. 5. 9 ~ 1982. 10. 2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1919년 경상북도 안동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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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95년 5월 9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하면(臨河面) 송천동(松川洞)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진천(鎭川)이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3월 18일 안동군 안동장터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안동 장터 만세운동은 안동교회의 김병우(金炳宇)·김익현(金翊顯) 등의 기독교 측과 유동봉(柳東鵬)·송기식(宋基植)·송홍식(宋弘植) 등 유림들이 주축이 되었다. 기독교 측과 유림들이 개별적으로 만세운동을 준비하다가 힘을 합쳐 시위를 펼치기로 결의하였다. 3월 18일 거사 당일, 물건을 매매하기 위하여 아침 일찍 안동면 장터로 향하였다. 장터에는 장꾼과 주민들도 붐볐으며 그 속에서 만세운동을 준비하던 유동붕과 송기식 등을 만났다. 이들에게서 태극기와 격문을 받고 현재 진행 중인 만세운동의 의미와 만세운동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를 들었다. 평소에 일제의 한국 지배가 부당하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낮 12시 경, 기독교도들이 먼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장터로 나와 「대한독립만세」가 쓰여 진 깃발을 들고 남문통(南門通)과 북문통을 오르내리며 행진하였다. 유동붕을 선두로 한 유림 측 주도 인물들과 함께 동문통에서 나와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위대가 장터 사방에서 만세소리와 함께 쏟아지듯 나오자 장꾼과 주민들도 환호하며 만세시위에 동참하였다. 점점 더 많은 군중들의 참여로 시위대 수가 늘어나자 만세운동 소식을 들은 일제 경찰들이 급파되었다. 일제 경찰은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하여 군중들에게 총칼을 겨누며 위협하였고 주도 인물도 14명 체포하면서 시위대는 잠시 해산시켰다. 잠시 중단된 만세시위는 저녁 6시 무렵 기독교도들이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전개하면서 다시 시작되었다. 여기에 참여하였고 시위는 자정을 넘어 3월 19일 새벽까지 이어졌다. 다른 시위대와 함께 군청과 경찰서,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 앞을 행진하며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고 시위를 벌였다. 새벽 1시 경, 시위 열기가 식지 않자 일본은 수비대를 출동시켜 주도인물들을 체포하고 시위대를 향하여 발포하였다. 이 과정에서 붙잡혔다. 1919년 4월 7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는데, 5월 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은 취소되었으나 징역 6월을 다시 받았다. 이에 상고하였지만, 그 해 6월 5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상고심에서 “우리의 자유를 우리가 얻기 위하여 만세를 부른 것이 왜 보안법 위반에 해당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항변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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