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일현
宋一鉉1867. 2. 12 ~ 1958. 4. 2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1919년 충청남도 서산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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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5) 1867년 2월 12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도이리(松田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1919년 4월 4일 이후 진행된 서산군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서산군 만세운동은 3월 19일 처음 시도되었으나 본격적인 만세운동은 3월 24일 해미면(海美面)부터였다. 이후 4월 초순 대호지면과 정미면(貞美面)의 천의(天宜)장터 만세운동을 시작으로 서산군내 각 면으로 확산되었다. 4월 2일 대호지면 서기 민재봉(閔載鳳)과 김동운(金東雲) 등이 만세운동을 하기로 계획하고, 면장 명의로 ‘4월 4일 아침 각 이장은 도로 보수에 나오라’고 지시하는 공문 8통을 작성하였다. 4월 3일 이를 마을 이장들에게 전달하고 밤에는 면사무소에서 애국가를 300여 장을 등사하고 태극기 1기를 제작하였다. 4월 4일 아침 면사무소 앞에 각 마을에서 약 500명의 주민이 모였다. 대호지면장 이인정(李寅正)이 “도로 보수를 위해 모이라고 한 것이 아니다”라며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는 연설을 하였다. 다른 주민들과 함께 이에 찬동하고 만세를 외쳤다. 주도자들의 인솔 하에 정미면 천의 장터로 행진하며 만세를 불렀다. 이어 천의경찰관주재소와 정미면면사무소 일대를 행진하며 만세를 고창하였다. 오후 4시경 순사들이 권총을 발사하자 군중이 천의경찰관주재소로 몰려갔다. 격해진 군중은 일본인 순사와 한국인 순사보를 구타하고 주재소를 파괴하였다. 이에 서산경찰서와 당진경찰서에서 경찰 8명이 파견되고, 홍성수비대에서 보병 5명이 지원되었다. 이들 일제 군경은 서산의 일본인들을 동원해 군중을 해산시키고 주도자를 포함해 21명을 체포하였다. 그러나 대호지면의 만세운동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4월 8일 송전리(松田里) 주민 20여 명이 경계 중인 군경을 공격하였으며 조금리(調琴里)에서는 70여 명의 주민이 만세운동을 재기하였다. 정미면 수당리(壽堂里) 등지에서도 300여 명의 주민이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자료의 미비로 참여한 만세시위와 만세시위 과정 중 역할을 알기 어렵다. 4월 대호지면과 정미면 일대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붙잡혔다. 같은 해 4월 24일 서산경찰서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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