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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계선

愼啓善

1875. 12. 6 ~ 1950.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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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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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濟州)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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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8) 1875년 12월 6일 전라남도 제주군(濟州郡) 신좌면(新左面) 신촌리(朝天里)(현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에서 아버지 신천규(愼千奎)와 어머니 전주 이씨 사이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진본계선(眞本啓善)으로 고쳤다. 1919년 당시 마을에서 서당 훈장으로 외세 침략에 대한 저항과 민족 독립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면서 3월말 신좌면과 구우면(舊右面)(현 한림읍)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을 계획하다가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과 평양 등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제주에서는 3월 21일부터 24일까지 신좌면 일대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3월 21일 오전 10시, 김용찬(金容燦) 등이 사전에 제작한 태극기를 흔들며 1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한국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다. 오후 3시~6시경 조천(朝天) 시장에서 서당 생도와 마을 주민 약 200여 명이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이때 주도자 13명이 붙잡혔으나, 조천시장 만세운동은 3월 22일 재기되어 전날 붙잡혀간 주도자들 탈환을 기도하며 3월 24일까지 계속되었다. 이후 구우면(舊右面)(현 한림읍) 저지리(楮旨里)(현 한경면 저지리) 훈장 박세현(朴世賢), 낙천리(樂泉里)(현 한경면 낙천리) 훈장 김여석(金汝錫), 조무빈(趙武彬)과 함께 서당 학생들을 규합하여 재차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계획하였다. 거사 직전 항일의거 성공을 위한 ‘고사(告祀)’를 지냈다. 이후 전도민의 궐기를 촉구하기 위해 ‘일본 타도’의 내용을 담은 격문을 작성하였고, 이 격문을 벽에 붙이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10월 15일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에서 이른바 정사범(政事犯)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6월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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