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해룡
邊海龍1883 ~ 1908. 9. 2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홍범도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03)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3) 함경남도 북청군(北靑郡) 성대면(星岱面) 삼리(三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08년 당시 25세로 기록되어 있어 1883년생으로 추정된다. 홍범도(洪範圖)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일제는 1905년 11월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하였으며, 1907년 7월에는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켰다. 또한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체결하여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 해산시켰다. 이에 반발하여 전국적으로 의병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1908년 5월 3일 삼수군(三水郡) 남회(南淮)에서 홍범도를 만나 홍범도 부대에서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1908년 5월에는 삼수군 갑산(甲山) 일대에 머물면서 중국을 왕래하여 탄약을 구입하는 활동을 하였다. 당시 정일환(鄭日煥)·임재춘(林在春)과 함께 홍범도의 편지를 가지고 간도사(間島社) 왕가동(王哥洞)으로 가서 김성단(金成瑞)에게 그 편지를 전하고 4~5일 머물렀는데, 이때 김성단으로부터 탄약을 매입하기로 약속하였다. 같은 해 8월에 돌아와 홍범도와 함경남도 장진군(長津郡) 배물리(拜物里, 섬암(蟾岩) 서방 약 3리)에서 만나 정일환의 편지를 전하였다. 이후 임재춘·정일환과 함께 중국으로 탄약을 구입하고자 가는 중에 1908년 9월 14일 홍원군(洪原郡) 대방막동(大方幕洞)에서 일본 제3순사대에 붙잡혔다. 한편 임재춘은 10월 8일에 혜산진(惠山鎭) 여사(旅舍)에서 체포되었으며, 정일환은 중국 청령(淸領)으로 이동하였다. 붙잡힌 후 북청경찰서에 구금되어 조사를 받던 중 이창수(李昌洙)와 함께 1908년 9월 21일 탈출을 시도하였다. 성공적으로 도주한 이장수와 달리 다시 붙잡혔고, 이에 크게 저항하였다. 하지만 다음날 일제 경찰에게 목숨을 잃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정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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