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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섭

申炳燮

1892. 4. 18 ~ 1933.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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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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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義城)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의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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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의성군 춘산면 금오동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2년 4월 18일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춘산면(春山面) 금오동(金梧洞)(현 금오리(金梧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났을 당시 농업에 종사하는 한편 유학을 공부하였다.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는 ‘양반(兩班)’으로 기록되어 있다. 의성군 춘산면 금오동에서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격문을 작성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의성군에서는 1919년 3월 1일 서울과 평양 등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근처에 위치한 대구(大邱)에서의 만세시위를 목격한 사람들이 전달한 소식과, 개인적인 이유로 서울이나 평양 등지로 갔다가 만세시위를 목격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전달한 소식 등이 알려지면서 3월 12일을 전후로 하여 만세시위가 시작되었고, 4월 3일까지 크고 작은 만세시위가 계속되었다. 1919년 3월 27일, 이웃한 청송군(靑松郡) 현서면(縣西面) 화목시장(和睦市場)에서 현서면 수락동(水洛洞)의 유지인 조현욱(趙炫郁)이 신태걸(申泰杰)·조병국(趙炳國) 등에게 격문을 보내어 만세운동을 계획한 일이 있었다. 화목시장에서의 만세시위는 구장(區長), 동민들이 많이 참여하였는데 동리에서부터 태극기를 흔들며 행진한 시위였다. 청송 화목시장의 만세시위와 근처의 동리,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만세시위의 소식을 듣고서는 금오동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다짐하였다. 이에 4월 1일 춘산면 금오동에 위치한 방오발(方五發)의 집에서 수십 명의 주민들이 모여서 동리의 일을 의논하는 동회(洞會)가 개최되자, 이곳에 참석하였다. 이때 동회 자리에서 “지금 전국 각지에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 운동이 일어나는 것은 이 시위로 인해 후일에 독립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라고 하면서 우선 주민들에게 각지의 상황을 전달하는 한편, 독립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독려하였다. 이어서 “지난 3월 27일, 이웃한 청송군의 화목시장에서도 운동을 하였는데, 유독 우리 마을에서만 만세운동을 하지 않는 것은 면목이 없는 일이다. 그러니 우리도 곧 의거를 실행합시다”고 설득하면서 주민들에게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강력하게 호소하였다. 이 제의에 따라 곧장 박수석(朴秀碩)·신종환(申宗煥) 등이 동의하였다. 이에 박수석·신종환과 즉시 협의하여 1919년 4월 3일, 금오동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고, 3인의 명의로 전통적인 유림(儒林)의 방식을 따라 만세시위의 참여를 호소하는 격문 작성을 주도하였다. 격문을 완성한 뒤, 금오동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 김태섭(金台燮)·이태성(李泰成) 앞으로 발송하였다. 죽음으로써 만세시위를 전개하겠다는 내용의 격문으로 김태섭과 이태성도 만세시위 계획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만세시위를 일으키기 전날인 4월 2일 일제 군경에 계획이 발각되어 붙잡혔고, 금오동 시위는 끝내 일어나지 못하였다. 1919년 4월 17일, 대구지방법원 의성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1920년 4월 28일 이른바 은사로 감형(恩賜減刑)을 받고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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