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김덕순

金德順

1901. 8. 8 ~ 1984. 6. 9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덕순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전남 광주(光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광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관련 사건

  • · 광주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8) 1901년 8월 8일 전라남도 광주군(光州郡) 본촌면(本村面) 본촌리(本村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전남 광주군 효천면(孝泉面) 양림리(楊林里)에 있던 수피아여학교(須彼亞女學校)의 학생으로 18세였다. 1919년 서울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난 후 나주군(羅州郡) 나주면(羅州面) 출신의 김복현(金福鉉)이 ‘경고 우리 이천만동포’ 라는 제목의 격문 100장, ‘2·8독립선언서’ 150장, ‘독립가(獨立歌)’를 인쇄한 유인물 100장, ‘국민대소집청원서’ 10장을 전남에 배포하라는 부탁을 받고 광주로 내려왔다. 1919년 3월 6일 밤 김복현은 광주군 내 효천면 양림리 남궁혁(南宮爀)의 집에서 광주 읍내의 유지였던 김강(金剛)·서정희(徐廷禧) 등과 모여 숭일학교(崇一學校) 교사 최병준(崔丙浚), 수피아여학교 교사 박애순(朴愛順) 등과 함께 만세 시위를 전개하기로 하였다. 이들은 3월 10일 광주 장날을 이용하여 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고, 김강의 집에서 독립가와 독립선언서를 비밀리에 인쇄하는 등 만세 시위를 위한 준비에 착수하였는데, 수피아여학교 학생으로 여기에 동참하였다. 3월 10일 오후 2시경부터 장터에서 시위를 주도하였다. 광주교(光州橋) 아래 강둑에서 열린 소시장(小市場) 방향으로 행진하며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 만세를 불렀다. 이때 숭일학교와 수피아여학교의 교사와 학생들, 기독교인들은 양림동(楊林洞) 방면에서 광주천(光州川)을 따라 내려왔다. 여기에 장터에 모여 있던 군민 수백명과, 광주농업학교(光州農業學校) 학생들도 가세하였다. 당일 오후 3시 경에는 1000여 명의 군중이 모여 태극기를 휘날리며 시위행진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서문통(西門通)과 우편국 앞, 그리고 본정통(本町通) 등에서 가두행진을 벌이며 만세 시위를 벌였다. 경찰이 출동해 100여 명을 붙잡아가자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이때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