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식
宋寅植1884. 9. 23 ~ 1959. 12. 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1919년 충청북도 음성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3) 1884년 9월 23일 충청북도 음성군(陰城郡) 대소면(大所面) 오류리(五柳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4월 2일 음성군 대소면 오류리에서 일어난 야간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대소면에서는 임경순(林景淳)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계획되었다.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운동 소식이 전파되어 대소면 인근 지역에서도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임경순은 임백규(林百奎)·이성교(李聖敎)·유해길(柳海吉)·김달년(金澾秊)·김동식(金東植) 등 동지를 규합하여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말 이들은 비밀회의를 개최하고, 대소면의 만세운동을 1919년 4월 2일에 거행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만세운동 준비에 착수한 이들은 마을별로 연락망을 구성하는 한편 만세시위에서 배포할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태극기도 제작하였다. 임경순 등 주도자들로부터 만세운동에 대한 사전 연락을 받고 참여할 결의를 다졌다. 4월 2일 밤 7시경 오산리(梧山里)에 위치한 대소면사무소 앞으로 갔다. 상당수의 군중들이 모이자, 임백규가 나서서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어 수백 명의 주민들과 함께 호응하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면장과 면사무소 직원들이 나와서 만세시위의 중단과 해산을 강하게 요구하였다. 이에 큰 자극을 받고 분노한 주민들은 임백규·김동식·김달년 등의 지휘에 따라 면사무소를 향해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뜨리고, 집기와 문서 등을 파기하며 건물의 일부까지 파괴하였다. 격렬하게 전개되는 시위를 해산시키기 위해 일제 당국은 진천(鎭川)에 주둔하고 있던 헌병수비대를 대소면으로 출동시켰다. 수비대에 의해 군중들이 해산되고, 주도자 가운데 임백규·김동식·김달년 등이 체포되었다. 이후 박영록(朴永綠)·박병철(朴炳喆)·박제성(朴濟成)·민병철(閔丙哲) 등과 함께 면사무소에서 해산한 오류리 주민들을 다시 규합하였다. 수십 명의 주민들을 이끌고 오류리 뒷산에 올라가 횃불을 밝히고,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제2차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오류리로 출동한 일제 헌병에게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같은 해 5월 10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태(笞) 90도(度)와 20원의 벌금 선고를 받았다. 벌금을 완납하지 않을 경우에는 20일간 노역장에 유치한다는 처분도 추가로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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