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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준

徐基俊

1854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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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서기준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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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함흥(咸興)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함흥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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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서기준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6)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6) 함경남도 함흥군(咸興郡) 상기천면(上岐川面) 오로리(五老里) 출신이다. 기록에 따르면 1909년 당시 56세로, 1854년생으로 추정된다.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가, 정미의병에 가담해 함흥 일대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1907년 일제가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한일신협약을 강요하여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 해산시키자 정미의병이 일어났다. 이 무렵 김봉연(金鳳連)·김기연(金基淵)과 함께 의병부대를 일으키고, 직접 의병장이 되어 활동하였다. 1908년 8월 의병 활동 중 일제 헌병대에 붙잡히자 부인인 오씨(吳氏)는 남편이 사망하였다는 헛소문을 듣고 “남편이 순절하였으니 내가 어찌 살 수 있겠는가” 하고 탄식하며 음독 자결하였다. 의탁할 곳이 없어진 두 자녀를 시장의 이웃들이 보살펴 구제하였다고 한다. 1908년 12월 21일 함흥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내란죄로 징역 10년을 받고 즉시 항소를 제기하여 서울로 압송되었으나, 1909년 3월 20일 항소를 취하하여 경성형무소에서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여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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