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강표
吳剛杓1844. 2. 9 ~ 1910.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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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립장(196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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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장(1962) 1844년 2월 9일((음) 1843년 12월 21일) 충청남도 공주군(公州郡) 사곡면(寺谷面) 월리(月里) 도덕동(道德洞, 현 공주시 사곡면 월가리 도덕마을)에서 부친 오치국(吳治國)과 모친 파평(坡平) 윤씨(尹氏)의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자는 명여(明汝), 호는 무이재(無貳齋)이다. 출생지에 관해서는 연기군(燕岐郡, 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과 전라북도 정읍시(井邑市) 태인(泰仁) 등도 거론되지만, 후손의 증언을 토대로 현지 향토사가들이 비정한 공주시가 정확한 것으로 보인다. 출생 연도도 1841년과 1848년 등 다른 설이 있는데, 이와 함께 기록된 사망일도 틀리게 기재되었기 때문에 이 틀린 사실로 미루어 신빙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동생인 오순표(吳純杓)가 썼던 「묘지(墓誌)」, 오순표의 부탁으로 최종화(崔鍾和)가 지은 「무이재오공강표행장(無貳齋吳公剛杓行狀)」 등에 의거해 1843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지만 올곧은 선비의 삶을 살았던 가풍을 이어 받아 어려서부터 성품이 바르고 의를 중시하였다. 집에서는 책을 가까이하고 간결·중후하면서 말이 적어 바깥 사물에 그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았다고 한다. 부친상을 당했을 때 3년 동안 상복을 벗지 않았으며 술과 고기를 먹지 않았고, 상을 마친 후에도 매일 관대를 바르게 하고 가묘를 모셨을 정도로 효성이 지극하였다. 약관의 나이에 부친의 명으로 유학자 임헌회(任憲晦)의 문하에 들어갔으나, 임헌회의 권고로 전우(田愚)에게 학문을 배웠다. 학문을 연마하는 동안 스승을 섬기기를 어버이 섬기듯 했고, 친구를 사귀는 데에도 예절을 행하는 등 충의의 마음씨가 남달랐다. 한편으로 전우의 학풍을 쫓아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도학적 전통을 고수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를 위해 은둔생활을 하면서 제자를 양성했던 스승과 달리 의리를 강렬하게 내세우고 실천하려는 지사형의 삶을 살았다. 1905년 11월 일제의 강요로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분격해서 “임금의 신하가 되어 이러한 때에 감히 생명을 아끼겠느냐”면서 을사 5적을 토벌해야 한다는 「청참조인제적소(請斬調印諸賊疏)」라는 상소문을 작성하였다. 이 글에서 시대의 흐름인 개화를 거부할 수 없지만 국왕과 신하가 적극 대응해서 외국과 만국공법에 의한 평등한 국가 관계를 맺어야 함에도 개인적인 부귀영화를 위해 자신들의 의무를 저버리고 외세에 굴복한 을사 5적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상소문을 충청남도 관찰사 이도재(李道宰)에게 올려 조정에 전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고 말았다. 이에 분을 이기지 못하고 청국 상인에게 아편을 구입한 후 공주 향교 명륜당(明倫堂)으로 들어가 대성통곡하고는 마침내 자결을 시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후에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성토하는 글을 쓰고자 하였으나 주변 사람들의 만류로 그만둔 적이 있다. 이후 실의에 빠져서 세상사에 뜻을 두지 않고, 항상 독약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한 와중에서 1907년 환갑을 훨씬 넘긴 나이에 모친상을 당하자 몸이 많이 쇠약한 상태에서도, 예를 다하였다. 1910년 8월 공주의 명강산(明岡山, 현 무성산)에서 은거하며 생활하던 중 일본이 국권을 강탈한 경술국치 소식을 접한 뒤 절명사(絶命詞)를 짓고 자결을 결심하였다. 자결 의지를 동학인 최종화에게 알리고, 「경고동포문(警告同胞文)」이란 유서 등을 지었다. 이 글에는 일제의 국권강탈을 막아내지 못했다는 뼈저린 반성과 함께 동시에 일본의 노예로 굴복하면서 살기보다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와 우국충정이 담겨져 있다. 이후 공주 향교의 명륜당에 들어가 벽에 글을 붙이고 대성통곡을 한 뒤에, 11월 17일((음) 10월 16일) 밤 강학루 들보에 목을 매어 유명을 달리하였다. 저술로는 『무이재집(無貳齋集)』 등이 있다. 연기군 남면(南面) 갈운리(葛雲里, 현 세종특별자치시 아름동, 도담동과 연기면 산울리, 해밀리 일대)에 구국 충성을 기록한 「오강표순절비」가 건립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한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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