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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현

金羅賢

1902. 3. 23 ~ 1989.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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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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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정읍(井邑)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정읍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전주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902년 3월 23일 전라북도 정읍군(井邑郡, 현재 정읍시) 입암면(笠岩面) 천원리(川原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전주군(全州郡, 현재 전주시) 이동면(伊東面) 화산리(華山里)에 있는 기전여학교(紀全女學校) 학생으로 당시 17살이었다. 전주 지역의 만세 시위는 1919년 3월 1일 오전 서울에서 전주군 천도교 교구실로 온 인종익(印宗益)이 독립선언서 1,000여 장을 전하면서 촉발되었다. 이후 천도교 조직을 통해 전북 지방 곳곳에 선언서와 운동 방식이 전파되었다. 천도교 전주교구에서는 기독교 측과 연락하여 만세 운동 계획을 추진해갔고, 준비 소식이 신흥학교(新興學校)와 기전여학교(紀全女學校) 등 기독교계 학교로도 전해졌다. 전주 지역 천도교계와 기독교계 인사들은 연대해 거사일을 전주면 장날인 3월 13일로 정하였다. 3월 13일 정오경 시작된 시위에서 천도교와 기독교 및 신흥학교와 기전여학교 학생을 주축으로 시위대가 구성되었다. 시위 행렬은 남문시장에서부터 제2보통학교를 거쳐 대화정(大和町, 현재 영화동)을 지나 우편국 앞까지 행진하며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 만세를 외치며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기전여학교 동료 학생 등 시위 주도자들 십여 명이 경찰에 잡혀갔다. 이후에도 시위가 이어져 오후 8시 무렵부터 경기도 인천 출신의 같은 학교 학생 김순실(金淳實) 및 20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이튿날 밤 2시까지 다시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남문 부근부터 전주경찰서 부근까지 행진하면서 독립 만세를 높이 부르고, 검거된 자들을 석방하라고 외쳤다. 시위 현장에서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6월 30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 형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9월 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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