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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창국

承昌國

미상 ~ 192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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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승창국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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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만주방면

관련 단체

  • · 대한통의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9) 자료의 한계로 출생일자와 출신지, 만주로 이주한 시기 등은 확인할 수 없다. 만주로 이주한 뒤 한인 마을이 형성된 서간도에 거주하면서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 가담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의 영향으로 인해 만주 지역의 한인사회를 기반으로 많은 독립운동 단체들이 조직되었다. 일제는 나날이 고조되는 한인 독립운동 세력을 보고, 1920년 10월 일본은 만주의 한인사회 및 한인독립운동 단체를 소탕하고자 2만여 명의 병사를 동원하여 수많은 한인을 학살한 간도참변을 일으켰다. 이후 대한독립단·한족회·서로군정서 등은 이러한 독립운동세력의 약화를 타개하기 위하여 1922년 1월경 통군부(統軍府)를 결성하였다. 같은 해 8월 말 환런현(桓仁縣) 마권자(馬圈子)에서 8단 9회 71명의 대표들이 모여 통군부를 통의부로 확대 재편성하고자 결정하였다. 당시 각 지역에 총관소를 두어 중앙과의 연락을 비롯하여, 관할 내 한국인들의 사무와 군자금 모집, 독립사상 고취 활동을 하였다. 일찍이 한족회에 가입하였고, 1923년에는 지안현(輯安縣) 집동총관소(輯東總管所)에서 재무로 활동하였다. 각 구역은 100~200호로 하고, 경비는 구의회에서 결의, 시행토록 하였다. 각 총관소에는 총감이하 구장(區長)·참사(參事)·서기(書記)·검무감(檢務監)·검무원(檢務員)·통신원을 각각 1명씩 두었다. 대한통의부 지안현 집동총관소 재무로 활동하던 중 중국 관헌의 압박이 심화되면서 1927년 5월경 차일빈(車曰彬)·최희관(崔熙官)·김병율(金丙律) 등을 비롯하여 70여 명이 체포되어 끌려갈 때 대원들과 함께 붙잡혀 희생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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