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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진

楊星鎭

1876. 5. 28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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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양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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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평양(平壤)계몽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평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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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면학회

포상 정보

  • · 애국장(2016)

관련 사건

  • · 105인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6) 1876년 5월 28일 평안남도 평양부(平壤府) 외성2리(外城二里, 현 평양직할시 중구역 외성동)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양성진(楊成鎭)울 사용하였다. 직업은 잡화상(雜貨商)이었다. 1907년 면학회(勉學會)에 참여하였고, 1910년 안명근(安明根)의 독립운동자금 모집에 참여하였다. 1906년 황해도 안악(安岳) 지역에서 최광옥(崔光玉)·김용제(金庸濟) 등 지역 유지들과 함께 민지계발(民知啓發), 산업증진(産業增進), 교육장려(敎育獎勵)를 목적으로 면학회를 조직하고 서기(書記)를 맡았다. 면학회는 1907년 면학서포(勉學書鋪)를 설립하여 출판과 서점 사업에 착수하였다. 동시에 김구(金九)·이광수(李光洙)를 초빙하여 양산소학교(楊山小學校)에서 사범강습회(師範講習會)를 개최하는 등 활발한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경술국치 이후 서간도로 이주했던 안중근(安重根)의 사촌동생 안명근(安明根)이 무관학교 설립을 위한 자금 모집을 위해 1910년 (음)12월 국내로 들어와 자산가가 많은 황해도 지역을 방문하였다. 이때 안명근의 무관학교 설립 자금 모집 계획에 찬동하여 고봉수(高奉守) 등과 함께 안악 읍내 자산가의 현황과 헌병분견소의 위치 등 지역 정보를 조사하여 전달하였다. 이들은 김구·김홍량(金鴻亮) 등 안악지역 애국계몽운동가들을 규합하여 12월 20일 오후 11시 안악 교외 남산 습락현(習樂峴)에 모여 거사를 일으키고자 하였다. 그런데 기대했던 인원에 미치지 못하여 다음해 1월 중순으로 거사 실행을 연기하였다. 하지만 자금 기부를 요구받은 민병찬(閔秉瓚)·민영설(閔泳卨)의 밀고로 1911년 1월 10일 안명근이 평양역에서 붙잡혔다. 일제는 무관학교 설립 자금을 데라우치(寺內正毅) 총독 암살을 위한 군자금 모집으로 날조하여 관련 인사 160명을 일제히 검거하였다. ‘안악사건(安岳事件)’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으로 붙잡혀 1911년 7월 22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징역 10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9월 4일 경성공소원에서 항소가 기각당하였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그 해 10월 20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다가 1915년 7월 18일 가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장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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