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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처달

承處澾

미상 ~ 1919.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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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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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정주(定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정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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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6)

관련 사건

  • · 평안북도 정주군 동주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6) 평안북도 정주(定州) 출신이다. 자료의 한계로 출생일자는 확인할 수 없다. 1919년 3월 31일의 정주군 동주면(東州面)과 읍내 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일제 경찰의 총격에 희생되었다. 정주군 동주면 만세운동의 주도자로 알려진 승인읍(承仁揖)의 아버지이다. 정주군 만세운동을 주도한 것은 천도교측이었다. 우선 천도교의 중진 간부인 김진팔(金鎭八)이 1월 5일부터 2월 22일까지 서울 우이동 봉황각(鳳凰閣)에서의 49일 기도회에 참석했다가 비밀 지령을 받고 2월 25일에 정주로 돌아왔다. 그리고 천도교 정주교구장(定州敎區長)을 비롯하여 여러 천도교 간부들과 곽산교구장(郭山敎區長) 등을 비밀리에 만나 3월 31일 정주 장날에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계획하였다. 이들은 장날인 31일 정주군 각 면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고 정주 읍내로 시위대를 진입시키기로 하였다. 이에 동주면(東州面)은 신안면(新安面)·고현면(高峴面)과 함께 정주읍성의 동문으로, 이언면(伊彥面)·덕달면(德達面)·아이포(阿耳浦) 등에서는 남문으로, 그리고 임해면(臨海面)에서는 서문으로 진입하기로 결의하였다. 동주면 봉명동 궁을촌은 천도교인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한 동네였는데, 박일경(朴一擎)과 천도교인 승인읍(承仁揖) 등의 주도로 태극기 2,000장을 제작해 면민들에게 배포하고 장날의 시위에 전원 참가하도록 권유하였다. 시위 당일이 되자 시위대 600여 명이 동주면사무소로 몰려가 포위한 후 면서기와 고원(雇員)을 위협하여 함께 만세를 부르게 하였고, 각종 문서 등을 포함하여 면사무소와 주재소에 불을 지른 후 만세 삼창을 하였다. 그리고 시위대는 약속한 대로 신안면과 고현면의 시위대와 합류하여 정주읍성 동문에 당도하였다. 정주 읍내에는 미리 잠입했던 선발대가 만세시위를 시작하였고, 각 면의 시위대와 일반인들도 합세하여 25,000명의 대규모 군중을 이루었다. 그러자 일제 헌병과 평양의 77연대에서 파견된 부대가 무력으로 시위대를 진압하기 시작하였다. 정주면의 시위대는 읍내에서 울린 총성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동문으로 돌진했고, 이에 일제 헌병과 수비대는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총을 쏘기 시작했다. 게다가 소방대와 엽부(獵夫)까지도 엽총으로 시위대를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만세시위에 대한 일제 측의 대응으로 사망자만 50여 명에 달했으며, 동주면에서만 12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혼란 속에 총에 맞아 중상을 입었다가 다음날 “조국을 위해 나는 죽으니 유감이 없도다, 나를 매장할 때에 곡읍(哭泣)치 말고 독립만세를 불러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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