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일상
承一相1889. 4. 6 ~ 1953. 8. 1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아산군 신창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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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89년 4월 6일 충청남도 아산군(牙山郡) 신창면(新昌面) 읍내리(邑內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2일 아산군 학성산 횃불시위와 신창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어 당시 아산지역에는 3월 11일 온양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운동장에 모여서 독립만세를 불렀고, 3월 14일 온양장터에 독립선언서가 군중들에게 뿌려지면서 공립보통학교 학생 100여 명과 장터에 모인 군중들이 함께 만세를 불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신창면에서는 박민성(朴敏成)이 주도하여 3월 18일, 신창시장에서 조명원(趙溟元)과 이상균(李祥均)을 만나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약속하였고, 공립보통학교 학생 김안기(金安基)에게도 독립만세를 부르도록 권유하였다. 그리고 4월 1일 탕정면·염치면·대방면·온양읍·둔포면 등과 공동으로 오후 8시 일제히 면내 각 마을의 산위에서 횃불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1919년 4월 2일, 이덕균(李悳均)의 주도하에 그날 오후 8시경 읍내리와 오목리 주민 약 200명과 함께 학성산(鶴城山)에 올라가서 횃불을 올리고 만세를 외쳤다. 이때 이덕균이 “관청을 파괴하자”는 주장에 호응하여 군중들은 학성산을 하산하며 돌을 주워 내려왔다. 만세군중은 면사무소로 가서 정윤흥 등의 주도하에 돌을 던져 문 2짝을 파괴하였다. 오후 9시경 100여 명의 군중들은 헌병주재소로 이동하였고, 그 가운데 15명은 주재소 안으로 들어가 돌을 던져 문등(門燈) 유리를 깨뜨렸다. 그리고 시위대 40~50명은 그날 오후 10시경 신창공립보통학교로 가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러자 학교장 무네카타(宗方喬)가 나와서 만세를 부르지 못하게 제지함으로 시비가 일어났다. 시위대는 학교 건물을 향하여 돌을 던져 유리창 272장과 문 4짝을 파손시켰다. 일제 헌병대에서는 헌병 7명과 보병 3명을 출동시켜 총을 쏘아 군중을 해산시키고 15명을 체포하였다. 이때 붙잡혀 1919년 5월 2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같은 해 6월 2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로 감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장을 추서하였다. ⋮여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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