承利鎭
承鎭1876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0)
관련 사건
- · 평남 중화군 당정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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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0) 평안남도 중화군(中和郡) 당정면(唐井面) 두정리(斗井里) 출신이다. 1919년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44세로, 1876년생으로 추정된다. 고향에서 문방구를 판매하는 일에 종사하다가 3월 28일 중화군 당정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옥고를 겪었다. 평안남도 중화군의 첫 만세시위는 천도교도들을 중심으로 하여 3월 2일 상원면(祥原面) 신읍리(新邑里)에서 일어났다. 첫 만세 시위에서 시위대를 강제 해산하려는 경찰과 대치, 충돌하게 되어 39명이 현장에서 붙잡혔다. 다음 날인 3일 오후에도 붙잡혀간 사람들에 대한 석방을 요구하고 전날의 만세 시위를 이어가려는 시위가 각각 기독교도들과 천도교도들에 의해 두 차례 일어났다. 중화군 읍내와 간동면(看東面) 간동 시장에서도 3일부터 10일까지 연일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이렇듯 연일 시위가 일어나자, 평양 경무부와 중화경찰서에서 파견된 경찰들이 각 동리를 돌아다니며 시위 주도자를 붙잡으려 하였다. 그럼에도 만세시위는 중화군 전체로 번져나갔고, 1919년 3월 28일 당정면의 면사무소가 있는 두정리(斗井里)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날 이인환과 사전에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협의한 뒤, 면사무소에 가서 ‘조선독립만세’를 불렀다. 이로 인해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평양복심법원에서도 기각되었다. 재차 상고하며 “이번 조선 전체에서 봉기한 독립 주창은 단지 우리들의 의사일 뿐만 아니라 세계 만국이 병기 사용을 멈추고 인도와 정의로써 강화를 주장하는 때에 민족자결주의가 전 세계의 귀와 눈을 선동한 것으로 조선도 천하의 대세에 따라 자제자주(自制自主)의 정의를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조선인에게만 한하여 그렇게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명치 28년(1895년) 조선 독립 담당자인 명치선제의 조칙에 봐도 일본도 진력하여 조력을 해야하는 사정이 있기 때문에 자유부흥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니 이것이 어찌 법률에 위반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주장하였다. 그럼에도 1919년 7월 19일 고등법원은 상고를 기각하여 징역 8월이 확정,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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