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
金吉浩1902. 10. 18 ~ 1951. 5. 1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담양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902년 10월 18일 전라남도 담양군(潭陽郡) 담양면(潭陽面) 양각리(羊角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당시 19세로 담양보통학교(潭陽普通學校) 4학년생이었다. 1919년 3월 11일, 담양에 거주하던 정기환(鄭基煥)은 광주에 갔다가 전날인 3월 10일 광주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난 사실을 알고 돌아왔다. 정기환은 군 지주회(地主會) 서기였던 국한종(鞠漢鍾)과 군청 고용원 정경인(鄭璟仁), 면작조합(棉作組合) 주사 임민호(林玟鎬) 등과 만나 담양면에서도 만세 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은 공직자로서 운동의 전면에 나서기 곤란하였기 때문에 3월 14일 임기정(林基正)에게 사정을 알리고 독립운동에 동참할 것을 승낙 받았다. 이튿날 정기환, 임민호, 임기정은 양각산(羊角山) 위에서 만나 거사일을 18일 장날로 정하였고, 임기정은 대중을 규합하는 수단으로 보통학교 학생들을 참여하도록 권유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당시 담양보통학교 4학년 학생으로서 같은 학교 3학년생이었던 김흥섭(金興燮)과 함께 3월 16일에 담양면 만세 시위에 참여할 보통학교 학생을 규합하고자 접촉해온 임기정을 만났다. 임기정은 각 학년 동급생들을 운동에 참가하도록 권유해줄 것을 부탁하였고, 이 역할을 맡기로 약속한 후, 그날 오후 김흥섭, 장삼채(張三采) 등과 함께 김탑쇠(金塔釗)의 집에서 백지와 붉은 색 염료를 사용하여 밤을 새워 150여 개의 태극기를 만들었다. 장삼채는 태극기를 17일 오전 5시경 담양시장 내 십자로(十字路)에 있는 다리 밑에 숨겨두었다. 3월 17일 방과 후에 김흥섭과 함께 담양보통학교 4학년생 교실 앞 교정에서 3, 4학년 학생 약 30명에게 18일 오후 2시를 기해 시장에서 ‘독립 만세’를 부르는 데 사용할 태극기를 자신들이 준비해두었으니 전부 담양시장으로 집합하여 만세 시위를 하자고 권유하였다. 3월 18일 오후 2시에 담양보통학교 학생들과 함께 담양면 장날을 기해 시장에 모여 독립 만세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수백 명의 시위대와 함께 독립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였다. 시위 현장에서 붙잡혔다. 1919년 5월 8일 광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여 그해 6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형을 선고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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