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석현
邊錫玄1849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유인석 의병부대
- · 박기섭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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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5) 황해도 평산군(平山郡)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49년생으로 추정된다. 호는 절곡(節谷)이다. 성재(省齋) 유중교(柳重敎)의 문인이고 의암(毅菴) 유인석(柳麟錫)의 동문사우로 황해도 지역 화서학파의 일원이었다. 황해도 지역에서 의병으로 활동하다 희생되었다. 단발령 이후 평산에서 황해도 지역 화서학파를 중심으로 의병봉기를 계획하였다. 때마침 유인석 연합의병이 출범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긴밀한 연계 속에서 유인석 연합의병에 군자금과 병사를 보내 지원하였다. 그리고 이조승(李肇承) 등이 유인석을 따라 서북행을 단행할 때에는 이를 후원하였으며, 이후 유인석 연합의병이 서북지역에서 활동할 때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또한 유인석이 중국으로 건너가 마을을 만들어 풍속을 지키면서 화맥을 보존하고자 하는 계획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지하였다. 그리하여 유인석인 곡부(曲阜) 연성공(衍聖公)에게 다시 공자의 초상을 받고자 할 때 윤헌(尹憲)과 함께 가고자 하였다. 1907년 8월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광무황제가 강제퇴위 당하고 이어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군대해산이 단행되었다. 이에 전국적으로 의병봉기가 일어나자 1907년 9월 평산 지역 화서학파 동문인 채홍두(蔡洪斗)·박양섭(朴陽燮)·우병렬(禹炳烈) 등과 함께 화서학파의 서북지역 거점인 평산 산두재(山斗齋)에 모여서 의병을 일으킬 것을 논의하였다. 이어 화서학파를 중심으로 유생들을 모아 1907년 9월 14일 평산군 마산면(馬山面) 도평리(挑坪里)에서 전 목천군수 박기섭(朴箕燮, 일명 박정빈(朴正彬))을 의병장으로 추대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이어진 부대편성에서 중군에 우병렬, 군모(軍謀)에 김기한(金起漢), 유격장에 유달수(柳達秀), 중대장에 심노술(沈魯述)·김정환(金正煥)·인두정(印斗鼎)·변승준(邊承準)·신도희(申道熙)·신성보(愼成甫)·한정만(韓貞萬), 참모에 정회규(鄭會奎)·채홍구, 서기에 신필수·이창하(李昌夏)를 임명함으로써 평산의병이 출범하였다. 평산의병은 화서학파를 중심으로 한 유학자들이 지휘부를 형성하였고 병사층에는 농민, 포수, 강화진위대가 중심이 된 해산군인 등 수천 명의 의병이 참여한 의병이었다. 부대 편성을 완료한 평산의병은 박기섭 의병장 명의로 1907년 9월 23일부터 격고문과 통유문 등을 각지에 발포하는 등 본격적인 의병활동에 나섰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으로 패산하고 중대 단위로 분리되어 황해도 각지로 분산되었다. 이들은 평산 도평리를 거점으로 장수산, 멸악산 등지를 배경으로 삼고 일제 침략기관을 공격하였다. 같은 해 10월 8일 돌격장 김창호(金昌浩)가 배천 관아와 일제 헌병분견소를 습격하고 무기를 노획하였으며, 10일에는 연안의 일본군수비대를 공격하였다. 12월에는 유격장을 중심으로 평산군 세곡면(細谷面)과 산외면(山外面), 그리고 남산리(南山里) 등지에서 일본군을 격파하였다. 일제의 탄압이 고조된 1908년 4월에는 편재를 재정비하여 평산을 중심으로 금천(金川)·해주(海州)·곡산(谷山)·서흥(瑞興)·재령(載寧) 등지에서 일본군에 대응하였으며, 일진회원 등을 처단하였다. 1910년 일제의 의병 탄압이 마무리되어 갈 무렵 여전히 지속적으로 의병전쟁을 전개하고 있었는데, 1910년 3월 3~4일에는 경의선 잠성역(岑城驛)과 계정역(鷄井驛) 사이에서 일본군 헌병대와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또 경술국치 이후인 1910년 11월 하순부터 1911년 11월 초순까지 지속적으로 의병항쟁을 이어갔다. 이러한 평산의병의 항쟁 과정에서 지휘관으로 활동하다가 붙잡혀 사망하였다. 정확한 사망일자는 확인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심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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