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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성

宋日成

1902. 11. 24 ~ 1994.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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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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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선천(宣川)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선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통의부
  • · 정의부
  • · 국민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2년 11월 24일 평안북도 선천군(宣川郡) 군산면(郡山面) 장곡동(長谷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는 송국정(宋國廷)·송헌(宋憲)과 한자를 달리하는 송일성(宋日晟)을 사용하였다. 정확한 시기는 확인할 수 없으나 만주에서 한족회(韓族會)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와 정의부(正義府)를 거쳐 국민부(國民府)에서도 활동을 이어갔다. 한족회는 남만주 지역의 한인 자치조직에서 출발한 독립운동 단체였다. 1919년 만세운동의 영향으로 만주에서도 독립선언과 만세시위가 활발히 이루어지게 되자, 보다 효율적으로 독립운동을 이어갈 수 있는 새로운 조직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기존의 자치단체인 부민단(扶民團)을 확대·개편하여 한족회를 결성하였다. 1922년 8월 한족회, 대한독립단, 광한단 등 남만주 지역의 주요 독립운동 단체들이 통합하여 대한통의부를 결성하였다. 소규모의 단일 병력으로는 효과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하기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한통의부의 일원이 되었으며, 중앙 검무원(檢務員)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대한통의부는 복벽주의 계열이 탈퇴하여 의군부(義軍府)를 설립하고,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세력이 참의부를 조직하여 이탈하는 등 몇 차례 분열의 위기를 겪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대한통의부를 비롯한 남만주 지역의 독립군들은 다시금 통합을 시도하였고, 그 결과 1924년 11월 정의부를 발족하였다. 대한통의부에 남아 있다가 정의부의 일원으로서 중앙위원, 정무위원 등을 지내며 활동을 지속하였다. 1927년 정의부 의사(議士)로서 군자금 모금활동을 조직하였다. 같은 해 (음)10월 말에는 정의부 제7구장(區長) 강제선(姜悌銑)에게 명령하여 대동강 유역의 마을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때 모인 1,438원을 류허(柳河) 지방의 정의부 검무원 김병철(金炳哲)에게 전달하여 학교 교육비와 지방교육비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1929년 정의부·참의부·신민부(新民府) 3부 통합운동 끝에 정의부는 국민부로 통합되었다. 이때 국민부 간부가 되었으며, 류허현 지방 공소장으로 재직하였다. 그러던 중 1931년 5월 국민부와 대립하던 공산주의 계열과의 세력 다툼 끝에 펑톈(奉天)으로 피신하였는데, 이때 펑톈영사관 경찰서에 붙잡혔다. 1931년 6월 7일 신의주경찰서로 끌려가 조사를 받았으며,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과 살인죄, 강도죄로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이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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