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선
嚴基善1929. 1. 21 ~ 2002. 12. 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3) 1929년 1월 21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엄항섭(嚴恒燮)과 연미당(延薇堂)의 맏딸로 태어났다. 본관은 영월(寧越)이다. 이명으로 엄기매(嚴琪梅)를 사용하였다. 아버지 엄항섭의 고향은 경기도 여주군 산북면 주록리인 관계로 경기도 여주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엄항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선전부장을 역임하였고, 김구(金九)의 최측근으로 활동하였다. 어머니 연미당도 상하이에서 한인여자청년동맹, 류저우(柳州)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대원, 충칭(重慶)에서 애국부인회 조직부장과 한국독립당 당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상하이에서 태어난 이후 부모를 따라 임시정부와 함께 생활하였다. 1932년 4월 윤봉길의사 의거 이후 자싱(嘉興)으로 가서 이동녕(李東寧)·이시영(李始榮) 등과 함께 지냈다. 중일전쟁 발발 이후인 1939년 2월 류저우(柳州)에서 결성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韓國光復陣線靑年工作隊)에서 활동하였다. 청년공작대는 중국인들의 항일의식과 항전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벽보·전단·연극 등을 통한 선전활동을 전개하였다. 어린 소녀와 소년들도 참여하였고, 이때 이화영(李華英)·김석동(金奭東)·오희영(吳姬英)·이남영(李南英) 등과 청년공작대의 활동을 도왔다. 연극공연 때 오희옥과 함께 러시아 사마귀춤을 추었고, 어린이들과 함께 ‘반달’ 노래를 불러 박수갈채를 받았다. 충칭(重慶)에 정착한 후에는 투차오(土橋)에 거주하면서 청화중학교를 다녔다. 1943년 2월경부터 임시정부 선전부장으로 활약하던 아버지를 도와, 중국방송국을 이용하여 임시정부의 활동상황과 일본군의 만행을 연합국과 국내 동포들에게 알리는 방송에 참여하였고, 일본군 점령지역 내 한국인과 국내 동포들에게 염전사상(厭戰思想)을 고취시켰다. 충칭 교외에 있는 포로수용소를 찾아가 일본군 포로 중 한국 국적 사병들을 위문하는 일에도 참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한시준⋮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