梁珣模
珣模1905. 11. 10 ~ 1945. 8. 2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조선학생과학연구회
- · 삼척재외학우회
- · 베이징반제대동맹(한인지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3)
관련 사건
- · 학생치안유지법사건
- · 베이징반제동맹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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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3) 1905년 11월 10일 강원도 삼척군(三陟郡) 북삼면(北三面) 비천리(飛川里)에서 양원달(梁源達)과 최씨 슬하의 2남으로 태어났다. 본적은 삼척군 미로면(未老面) 고천리(古川里)이다. 1924년 서울의 보성고등보통학교(普成高等普通學校)에 입학하였고, 1925년 9월 창립된 사회주의계열의 학생결사 조선학생과학연구회(朝鮮學生科學硏究會)에 가입해 활동하였다. 1927년 삼척재외학우회(三陟在外學友會)의 초대 집행위원장이 되었고, 1928년 재선되었다. 1928년 9월 조선학생과학연구회(이하 '연구회') 제7회 정기총회에서 서무부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1월 26일 서대문경찰서에 붙잡혀 12월 6일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검사국에 넘겨졌다. 예심에서 불기소 결정으로 풀려났지만, 연구회의 개정규약을 등사·배포한 것이 출판법 위반이라 하여, 1929년 3월 4일 경기도경찰부에 재차 붙잡혀 조사받고 풀려났다. 1929년 5월 11일 연구회 집행위원장에 선출되어, 회원 및 재정 관리, 기관지(『학생과학』) 간행, 추계 음악회 및 학술강연회 등을 이끌었다. 11월 22일 연구회 차원에서 몇몇 중등학교의 비밀독서회 조직을 지도하고 맹휴를 배후조종했다는 이유로 종로경찰서에 잡혀가 취조 받았다. 1930년 4월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2학년을 중퇴하고, 중국 베이징(北京)으로 가서 화베이대학(華北大學)에 입학하였다. 이후 시안먼(西安門) 대가(大街) 7호의 공우(公寓)에 거주하며, 베이징반제대동맹(北京反帝大同盟)에 가입하였다. 1931년 1월말 경 김성일(金成一)의 권유로 보성전문 동창이면서 베이징대학(北京大學) 재학생인 강릉(江陵) 출신 최신영(崔信泳) 및 삼척 출신 김용운(金龍雲) 등과 반제대동맹 한인지부를 설립하였다. 매주 1회씩 지부 서성반(西城班) 모임을 가지면서 활동하고, 3·1운동 기념일, 5·1 메이데이, 8·29 국치기념일에는 본부에서 만든 격문을 살포하였다. 1931년 11월 13일 한위건(韓偉健)·김성일 등과 국내 반제동맹 조직에 대해 협의하고, 이틀 후 서울로 들어왔다. 같이 밀입국한 최신영과 김용운이 경찰에 붙잡혀 기소되었으나, 양순모는 피신하여 기소중지자가 되었다. 1932년 4월 2일 경기도 경찰부 고등과에 붙잡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7월 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1933년 11월 24일 만기 출옥하여 중국으로 건너갔다가, 1945년 8월초 밀입국하여 강원도 춘천(春川)에서 광복을 맞았는데, 같은 달 26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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