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두원
孫斗源1883. 4. 6 ~ 1919. 3. 2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01)
관련 사건
- · 안동군 길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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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01) 1883년 4월 6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하면(臨河面) 오대동(梧垈洞)에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1919년 3월 21일 안동군 길안면(吉安面) 천지(泉旨)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길안면 천지시장 만세운동은 손영학(孫永學)·김정익(金正翼)·김정연(金正演) 등 같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주도하였다. 이들은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안동군에서도 안동면·예안면(禮安面) 등지에서 연이어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는 것에 자극을 받아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장소는 임하면과 가깝고 많은 사람이 모이는 길안면 천지시장으로 결정하였으며 장이 서는 3월 21일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만세운동의 성공을 위하여 뜻을 함께할 사람들을 규합하였고 비밀리에 이 소식을 듣고 참여하게 되었다. 1919년 3월 21일 거사 당일, 직접 만든 태극기를 가슴에 품고 아침 일찍 천지시장으로 향하였다. 오후 3시경 장터에는 이미 장꾼과 주민들로 붐비고 있었다. 이 틈에 손영학과 주도자들은 장터 가운데에 미리 준비한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큰 깃발을 꽂고 만세를 선창했다. 다른 만세시위 참가자들과 함께 소리 높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외침에 장터에 있던 장꾼과 주민들도 호응하며 ‘독립만세’를 불렀고, 어느덧 장터 안은 만세소리로 가득 찼다. 만세운동의 열기가 뜨거워지자 손영학의 통솔 아래 다른 35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길안면사무소로 향하였다. 시위대는 면사무소 앞에서 ‘독립만세’를 부르고 면장과 면서기의 만세운동 동참을 요구하며 면사무소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출동한 경찰에 의해 제지당하였고 면사무소 출입문과 창문에 돌을 던지며 항의하였다. 이후 시위대와 함께 길안면 경찰관주재소로 가서 주재소를 포위하고 ‘독립만세’를 연호하였다. 일제 경찰은 만세운동을 제지하기 위하여 시위대에게 무력을 행사하였고, 이에 분노해 투석전을 벌이며 저항하였다. 만세운동은 자정이 가까운 시간까지 이어졌으며, 시위가 더 이상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일제 경찰은 시위대를 향하여 발포하였다. 총성에 위협을 느껴 다른 시위대와 함께 부득이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일제 경찰은 다음날부터 만세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에 대한 체포에 나섰다. 3월 24일 만세시위에 참여한 사실이 발각되었다. 끝까지 체포에 저항하다가 일제 경찰의 칼에 찔려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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