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동일
孫東日1892. 2. 13 ~ 1928. 7. 3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3)
관련 사건
- · 의성 비안면(3.12)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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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3) 1892년 2월 13일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비안면(比安面) 동부동(東部洞)에서 태어났다. 한자가 다른 손동일(孫東一)을 이명으로 사용하였다. 1919년 3월 16일 의성군 비안면 동부동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운동 소식은 참여자들과 여행객을 통해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되어, 3월 중순에 이르러서는 전국 지방사회에서 자체적인 독립만세운동을 모색하는 수준으로 성숙해지고 있었다. 의성군 만세운동은 3월 12일에는 비안공립보통학교 학생과 주민이 만세운동을 기획한 것을 시작으로 점차 확산되는 양상을 보였다. 3월 12일을 기해 기획된 만세운동이 일시 소강 상태에 접어들자, 임재호(林在虎)는 김석근(金碩根)·박후도(朴後度)·박홍섭(朴洪燮) 등 애국청년들과 함께 김석근의 저택에서 회합을 갖고, 독립만세운동의 열기를 이어나가기 위해 후속 시위를 도모하기로 결의했다. 이들은 다음날 저녁 8시를 기해 서부동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거행하기로 합의하고 먼저 거사에 사용할 태극기 120개를 사전 제작하였다. 거사 당일, 서부동 장터에 모인 거사 주도인물들과 주민들은 별도로 동부동에서 서부동 장터를 향해 시위행진을 하던 1백여 명의 군중과 합류하여 연합시위를 전개했다. 이에 당황한 일제 군경은 시위대를 강압적으로 해산하려하였고, 이 과정에서 주도인물 중 한명인 김석근이 체포되었다. 3월 13일의 의거 후 일제의 검속을 피해 은신한 임재호는 박후도·박홍석(朴弘燮)·신석이(申錫伊)·박말수(朴末秀)·황돌이(黃乭伊)·김성근(金聖根) 등 동지들과 상의하여 3월 16일 장날에 재차 만세시위운동을 거행하기로 결정했다. 이때 결의를 함께 하고 주민을 규합하고 시위에 사용할 용품을 제작하는 준비에 동참했다. 거사 당일 오후 3시경 시위 주도인물들과 함께 시장에 모인 50여 명의 군중에게 준비한 태극기를 배포하며 독립만세를 앞장서서 외쳤다. 그 과정에서 동부동을 일주하며 시위 행렬의 선두에서 시위를 주도하다가 일제 군경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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