成樂衆
成衆1895. 3. 17 ~ 1919. 3. 3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16)
관련 사건
- · 용인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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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6) 1895년 3월 17일 경기도 용인군(龍仁郡) 원삼면(遠三面) 사암리(沙岩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3월 31일 원삼면과 외사면(外四面, 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다가 희생되었다. 용인 지역에서는 3월 21일 원삼면에서 최초의 만세운동이 일어난 후, 원삼면을 중심으로 3월 28일부터 4월 2일까지 집중적으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용인 지역 만세운동은 시간이 갈수록 지역별 연합에 의한 대규모 만세시위로 확대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제의 탄압에 맞서 매우 격렬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만세시위가 확산되면서 용인에서는 희생자의 숫자도 늘어갔고, 그러한 소식을 접하면서 일제 경찰과 헌병대에 대한 분노와 나라의 독립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3월 31일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 날의 만세시위에는 무려 3,000여 명의 주민들이 참여했는데, 만세시위 시작부터 주민들은 일제 당국과 헌병대에 대한 깊은 분노심을 표출했다. 만세시위 지도부의 지휘에 따라 분노한 다른 주민들과 함께 큰 목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연창하면서 외사면에 위치한 일제 헌병대의 주재소를 향해 행진하였다. 원삼면에서 다시 대규모 만세시위가 발생하여 시위대가 헌병주재소를 향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일제 헌병대는 곧바로 무장을 갖추고 출동했다. 만세시위대가 원삼면과 외사면의 경계를 이루는 비두리고개에 이르렀을 때, 백암의 헌병분견소와 용인의 헌병대에서 출동한 일제 헌병대가 잠복하고 있다가 만세시위대를 향해 무차별적인 발포를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 헌병대의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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