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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군호

孫君浩

1902. 9. 24 ~ 1976.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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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손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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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양산(梁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양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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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902년 9월 24일 경상남도 양산군(梁山郡) 웅상면(熊上面) 평산동(平山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손동호(孫東浩)를 사용하였다. 1919년 3월 부산 범어사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부산 범어사(梵魚寺) 대표 김영규(金永奎)·차상명(車相明) 등 7명이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부산으로 내려와 범어사 중심의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정하고 학생들에게 서울에서의 만세운동 소식을 알려주었다. 이에 범어사 부속 초등학교 과정인 명정학교(明正學校)와 3년제 중등학교 과정인 지방학림(地方學林) 학생들은 동래읍 장날인 3월 18일을 시위 날짜로 정하고 준비를 하였다. 졸업생 송별회가 있던 1919년 3월 17일 저녁 김영규의 축사가 끝난 뒤 40여 명이 동래읍으로 향하였다. 명정학교 학생 오계운(吳啓運)의 누설로 이 사실이 미리 알려져 주도자인 김영규 등은 연행되고 나머지는 강제 해산되었다. 해산 당한 학생들과 함께 다시 만세운동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1919년 3월 18일 밤 약 40명의 학생들과 동래읍 서문에서부터 남문까지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운동을 주도한 뒤 해산하였다. 다음 날인 3월 19일에 다시 모여 남문 부근에서부터 동래경찰서 앞까지 가서 만세운동을 하였다. 이때 출동한 경찰에게 붙잡혔다. 1919년 4월 27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김영규 외 12명은 항소하여 같은 해 5월 2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판결을 받았는데, 이때 이름이 없는 것으로 보아 항소에서 빠진 것으로 보인다. 광복 이후인 1952년 경남 양산군 웅산면 부의장을 역임하였다. 1995년 3월 1일 에 설치한 3·1운동 유공비(현 범어사 문화의 거리에 위치)에 이름이 들어가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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