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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휘태

蘇輝泰

1870. 1. 2 ~ 1948.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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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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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성(安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안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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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안성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0년 1월 2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원곡면(元谷面) 칠곡리(七谷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소태삼(蘇泰三)이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4월 1일 안성 양성면(陽城面)과 원곡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안성 원곡면·양성면 만세운동은 1919년 만세운동 절정기의 시위였다. 양성면과 원곡면 마을 주민들이 각각 1천여 명씩 참가한 대규모 만세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원곡면의 군중이 외가천리(外加川里)에 있는 원곡면 사무소에서 시위를 마치고 양성면으로 넘어가면서 더욱 과감해지고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 과정 중에 같은 칠곡리에 거주하던 이유석(李裕奭)과 홍창섭(洪昌燮)의 권유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특히 시위를 주도하던 최은식(崔殷植)·홍창섭(洪昌燮)·이유석(李裕奭) 등은 양성면에 있는 주재소·우편소·면사무소를 파괴할 것을 주장하였고 이들의 주장에 동의하여 곧 실행으로 옮겼다. 양성면 주재소에 도착해서 이유석의 지휘로 주재소에 들어가 의자와 책상을 부수고 불을 질렀다. 우편소에 가서는 정용재(鄭容在)의 지휘로 내부의 서류를 꺼내어 불태웠다. 이후 원곡면사무소로 가자는 지도부의 지휘에 따라 군중들과 함께 원곡면사무소로 행진하였다.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원곡면사무소가 불타고 있어 추가적인 공세적 행위는 행하지 않았다. 일제의 대대적인 검거 활동으로 붙잡힌 뒤 재판에 회부되었다. 내란죄 적용 문제를 두고 오랜 조사와 공판이 이어졌다.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에서 내란죄를 적용하지 않기로 하고 경성지방법원으로 관할 재판소를 지정받았다. 같은 해 8월 1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변호사들의 사법 절차 문제 지적의 결과 공소 불수리 처분을 받았다.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건조물 소훼죄, 소요죄 등으로 징역 3년(미결구류일수 중 50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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