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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휘선

蘇輝先

1891. 1. 26 ~ 1973.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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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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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성(安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안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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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안성군 원곡면.양성면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1년 1월 26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원곡면(元谷面) 칠곡리(七谷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소흥복(蘇興福)이 있다. 서당에서 5년간 한문을 배웠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4월 1일 안성군 원곡면·양성면(陽城面)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4월 1일 원곡면에서는 1천여 명의 시위 군중이 외가천리(外加川里)에 있는 원곡면사무소 앞에서 만세를 시작해 양성면으로 향하였다. 이 과정에서 양성면 소재 주재소·우편소·면사무소의 파괴를 결의하였다. 이 과정 중에 같은 마을에 거주하던 홍창섭(洪昌燮)·이유석(李裕奭)의 권유로 만세시위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유석이 양성면으로 넘어가는 고개에서 공격적 시위를 주장하자 이에 찬동하였다. 그리고 양성면으로 행진하여 그곳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던 군중과 합쳐진 2천여 명에 이른 대규모 시위대와 함께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오후 10시경 정주하(鄭柱夏)·김필연(金必然) 등과 함께 주재소와 숙직실을 불태우고 우편소 건물을 파괴·방화하였다. 일본인 잡화점과 고리대금업자의 집도 파괴하였고 뒷산에 올라 독립만세를 외치고 해산하였다. 나머지 시위대는 원곡면사무소로 돌아가 만세시위를 계속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내란죄 적용 문제를 두고 오랜 조사와 공판이 이어졌다.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에서 내란죄를 적용하지 않기로 하고 경성지방법원으로 관할 재판소를 지정받았다. 같은 해 8월 1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변호사들의 사법 절차 문제 지적 법정투쟁의 결과 공소 불수리 처분을 받았다.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건조물 소훼죄, 소요죄 등으로 징역 2년(미결구류일수 중 50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김정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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