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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후옥

蘇厚玉

1887. 2. 6 ~ 1961.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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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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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성(安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안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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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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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7년 2월 6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원곡면(元谷面) 칠곡리(七谷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소선옥(蘇先玉)·소휘옥(蘇輝玉)이 있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4월 안성군 원곡면·양성면(陽城面)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1919년 4월 1일 조경숙(趙敬淑)과 이덕순(李德順)에게서 권유를 받고 양성면과 원곡면에서 대규모 합동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원곡면 칠곡리의 이유석(李裕奭)·홍창섭(洪昌燮), 외가천리(外加川里)의 최은식(崔殷植)·이희용(李熙龍) 등이 주도하여 양성에서만 1천여 명의 군중이 모였고 원곡면을 지날 때 즈음에는 2천여 명의 시위대가 되어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이때 정주하(鄭柱夏)·김필연(金必然) 등과 선두에서 양성면 주재소까지 시위를 이끌고 일제의 관공서 파괴에 앞장섰다. 주재소의 숙직실과 그 부근의 건물을 불질렀으며 양성우편소는 물론 고리대금업자를 비롯한 일본인 상점을 파괴하였다. 양성면사무소의 호적원부를 소각하고 면장을 포박하기도 하였다. 이어서 원곡면 사무소로 향하여 원곡면사무소 파괴에도 동참하였다. 일제의 대대적인 검거 활동으로 붙잡힌 뒤 재판에 회부되었다. 내란죄 적용 문제를 두고 오랜 조사와 공판이 이어졌다.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에서 내란죄를 적용하지 않기로 하고 경성지방법원으로 관할 재판소를 지정받았다. 같은 해 8월 1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변호사들의 사법 절차 문제 지적 법정투쟁의 결과 공소 불수리 처분을 받았다.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건조물 소훼죄, 소요죄 등으로 징역 7년(미결구류일수 중 50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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