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기종
蘇基宗1872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2)
관련 사건
- · 평안남도 중화군 상원면 만세 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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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2) 평안남도 중화군(中和郡) 상도면(上道面)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872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당시 향리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중화군 상원면(祥原面)의 만세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가 옥고를 겪었다. 중화군 상원면 신읍리(新邑里) 만세시위는 중화군 만세운동을 이끌어낸 첫 시위였다. 상원면 운동은 3월 1일 교단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은 천도교도들이 주축이 되었다. 이 지역 천도교도 김동식(金東植) 등은 만세 시위를 거행할 시기와 방법을 논의하여, 예배날인 이튿날 바로 시위를 거행하였다. 2일 아침 교구실에 천도교 신도 약 200명이 모이자 선언서를 낭독한 뒤 시가행진에 나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거리로 나온 시위에 군중들이 참여하기 시작하여 약 700명의 규모가 되었다. 시위대는 경찰주재소 방향으로 행진하며 독립 만세를 불렀다. 일제 경찰이 출동해서 일부 주도자를 검거하였으며, 천도교 교구실을 습격하여 시위대의 강제 해산을 시도했다. 시위대는 이에 맞서 경찰서장, 순사부장, 순사보 등을 공격하며 몰아 붙였고 시위대는 그들을 주재소 안으로 몰아넣고 경찰이 가지고 있던 총기와 탄약을 빼앗았다. 또한 중화경찰서장을 사로잡아 포박하고 주재소를 포위하여 경찰과 대치하게 되었다. 그러자 당시 상원 읍내에 있던 일본인 우편소장(郵便所長)이 평양에 급히 전보를 보내어 이러한 사정을 평양 경무부에 알렸고, 경무부에서는 장교 이하 보병12명과 경찰 2명을 자동차로 현지에 급히 보냈다. 파견된 군경에 의해 시위 군중은 총기와 탄약을 도로 빼앗겼으며, 이 가운데 39명이 현장에서 검거되었다. 다음날인 3월 3일 오후 3시경, 이번에는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만세 시위가 일어났으며, 시가행진을 한 뒤에 약 50명의 군중이 다시 주재소로 가서 검거된 이들을 석방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 직후 일제 헌병은 무자비하게 시위를 진압하여 시위대에 사상자가 발생했다. 같은 날 4시에 다시 천도교인들을 중심으로 한 시위 군중이 시내를 돌며 중단된 만세 시위를 이어갔는데, 이때도 경계 중에 있던 일본군과 충돌하여 10여 명의 사상자가 났으며 평양에서는 다시 20명의 부대를 증원 파견했다. 이러한 중화군 상원면 만세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3월 3일 상원면 만세 시위에서 일제 경찰의 대규모 체포 작전 때 붙잡혀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평양지방법원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았다. 판결에 불복하여 고등법원에 상고했지만, 1919년 10월 16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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