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룡
金基龍1878. 4. 23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7)
관련 사건
- · 고산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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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7) 1878년 4월 23일 함경남도 정평군(定平郡) 고산면(高山面) 풍송리(豊松里)에서 태어났다. 직업은 포목상이었다. 정평군의 만세 시위는 1919년 3월 7일 부내면(府內面) 풍남리(豊南里)에서 기독교인 300여 명의 시위로 시작되어, 남산리(南山里) 만세 시위로 이어졌다. 3월 8일부터 13일까지 춘류면(春柳面) 신상리(新上里)·신하리(新下里)·신포리(新浦里)와 주이면(朱伊面) 영성리(嶺城里) 등 정평군의 동부 지역과 남부 지역으로 만세 시위가 확산하였다. 정평군에서 만세 시위가 확산하던 3월 14일, 고산면 덕흥리(德興里) 김두환(金斗煥)의 집에서 최병헌(崔炳憲) 등과 모여서 3월 16일 고산면에서 만세 시위를 전개하기로 계획하였다. 3월 16일 고산면 풍송리에서 최병헌·김두환과 함께 시위대를 이끌었다. 시위대는 풍송리 헌병주재소로 행진하였고, 헌병주재소 앞에서 독립 만세를 고창하였다. 17일에도 시위대를 주도하여 헌병주재소 앞에서 독립 만세를 외쳤다. 17일 풍송리의 만세 시위는 고산면의 풍서리(豊西里)·구창리(舊倉里)·신경리(新京里)의 만세 시위로 이어졌다. 18일에도 고양리(高陽里)·구창리·남양리(南陽里)·신경리·풍양리(豐陽里)의 주민이 헌병주재소 앞에서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3월 16일부터 20일까지 고산면의 거의 전 지역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만세 시위 주도 혐의로 체포되어 1919년 6월 5일 함흥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하였다. 7월 1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하자 다시 상고하였으나 8월 20일 고등법원에서도 기각하여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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