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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봉생

安鳳生

1908. 11. 22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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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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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벽성(碧城)중국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벽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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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908년 11월 22일 황해도 벽성군(碧城郡; 현 해주 일대) 금산면(錦山面) 냉정리(冷井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순흥(順興)이다. 안중근(安重根)·안정근(安定根)·안공근(安恭根) 형제의 5촌이자, 광복군 출신 안춘생(安椿生)의 형이다. 1917년 가족과 만주로 망명하여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하얼빈(哈爾賓)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1927년 9월 지린성(吉林省) 주허현(珠何縣)에서 김좌진(金佐鎭)의 의뢰로 독립운동을 위한 인재 양성과 교육에 힘썼다. 1931년부터 이듬해까지 왕예먀오(王爺廟)의 동광학교(東光學校)에서 독립투사 양성교육에 종사하였다. 1933년 초 일제 경찰을 피해 만주를 떠나 난징(南京)의 중앙육군군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바로 이 무렵 김구(金九)가 중앙육군군관학교 내에서 장제스(蔣介石)와 회담하여 뤄양분교(洛陽分校) 내에 한인특별반(韓人特別班)을 설치키로 합의하였다. 1935년 여름 안공근의 지시로 헤이룽장성 란시현(蘭西縣) 삼합농장(三合農場)의 오영렬(吳永烈)과 더불어 청소년들을 독립투쟁 인재로 양성하는 데 힘썼다. 1935년 12월 정준수(鄭駿秀)의 밀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4개월 간 옥고를 겪었고, 출옥 이후에는 일제의 ‘요시찰 대상’으로 분류되어 감시와 통제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신주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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