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상
申鉉商1905. 2. 12 ~ 1950. 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남화한인청년연맹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호서은행 탈취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905년 2월 12일 충청남도 예산군(禮山郡)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평산(平山), 호는 일연(一鳶), 이명으로 신현정(申鉉鼎)을 사용하였다. 1930년 독립운동자금 모집을 위해 호서은행 예금 인출에 나섰다가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1929년 8월 평양의 최갑룡(崔甲龍) 등이 조직한 전조선흑색사회운동자대회에 참여하였고, 이 무렵 일제 형사대에 붙잡혀 강제 추방당하였다. 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가 상하이노동대학에 다녔고, 독립운동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국내로 돌아왔다. 중국에서 활동 중인 아나키스트 동지들이 운동자금의 부족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상황을 안타까워하던 중, 고향인 예산에서 정미업을 하던 최석영(崔錫榮)이 거래처인 호서은행(湖西銀行)에 상당한 신용이 있음에 착안하였다. 1930년 2월 최석영과 함께 호서은행 예산지점에서 위조 환증(換證)을 이용하여 15회에 걸쳐 5만 8천 원을 인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최석영과 함께 함남 정평(定平)에 들러 동지 차고동(車鼓東)과 3월 22일경 베이징(北京)에 도착하였다. 이어서 텐진(天津)의 이회영(李會榮)을 비롯해 북만주의 이을규(李乙奎)·김종진(金宗鎭), 상하이의 정화암(鄭華岩)·백정기(白貞基) 등이 베이징으로 집결해 비상대표자회의를 개최하였다. 임시정부의 김구(金九)도 자금의 공동 사용을 제안하였다. 이들은 만주의 한족총연합회를 통해 독립군기지를 건설하는 일에 집중키로 결의하였다. 그러던 중, 4월 30일 텐진 일본영사관 경찰과 중국 경찰들이 급습하여 김종진·이을규 등 10명과 함께 붙잡혔다. 이때 중국 관리들과 친분이 있는 유기석(柳基石)이 나서 다른 사람들을 석방시켰지만, 최석영과 함께 일제에 인계되었다. 자금 중 일부는 유자명(柳子明)의 남화한인청년연맹(南華韓人靑年聯盟) 창립과 무기 구입에 사용되었다. 국내로 압송되어 1930년 12월 2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4년이 구형되었고, 12월 10일 확정되어 공주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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